산짱을 제주도의 땡볕 아래 떼어 놓고 나만 홀로 서울로 와 눅눅한 습기 속에 있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혼자 집에 앉아서 창문을 열어 놓고 스탠드를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을 하고 열어 놓은 창문에서 눅눅한 바람이 불어오고 나는 미지근한 차를 한잔 마시고 그리고 책을 읽는다. 그것은 마치 3년 전이나, 5년 전과 같은 그런 일상이어서 나는 마치 어떤 시간을 건너 뛰어온 기분이 든다. 마치 긴 꿈을 하나 꾸었고 그 꿈에서는 내가 예쁜 아기의 엄마가 되었고 그 아기가 꽤 커서 엄마엄마 말을 하며 옷스스, 하며 옥수수를 먹고 즈쑤, 하며 쥬스를 마시고 이제 막 송곳니가 나는 장면까지 꿈을 꾼 것 같다. 잠에서 깨어보니 뭔가 가슴이 텅 비어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긴 사랑의..
요즘 근대의 대례복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대례복은 중요한 외교의 자리에서 높은 수장을 만날 때 착용하는 옷이다. 즉 왕을 만나거나, 황제를 만나거나 할 때 가장 예의를 차리는 옷차림이다. 우리나라 역시 전통적인 대례복이 갖추어져 있다. 물론 근대적인 외교 관계가 시작되는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역사가 너무 길어서 그런지 근대에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면 전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전통들은 실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입헌군주제가 거의 대부분 사라진 오늘날에 와서는 대례복은 의미가 없어졌고 번듯한 수트를 입으면 그걸로 예의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자료를 찾던 중, 왕을 만날 일이 있는 우리의 대통령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는..
산짱의 진정한 첫번째 겨울이 지나갔다. 이제는 정말 날씨가 풀렸네. 동물원 반대론자인 엄마는 아직도 산짱과 동물원에 갈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했다네. 산이는 팽귄과 기린과 사자와 코끼리와 곰과 고양이를 사랑한다네. 그리고 산이는 ELO의 mr skyblue를 사랑하지. 이 아가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을까. 이 아가의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엄마는 늘 뭔가를 제대로 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네. 늘 경이롭고, 늘 미안하고, 늘 사랑한다네. 사랑한다, 내 아가.
조용한 방 안에 가습기가 물방울을 만들어 내는 소리와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텅 비어 있는 방이, 무언가로 가득차 있는 것만 같고,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삶 역시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무언가로 가득차 있는 것만 같다. 실제로도 그렇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 종일 아기와 살고, 아기를 위해 살고, 다시 아기를 위해 존재한다. 남편은, 직장이 있고, 해야할 공부가 있고, 운동을 한다. 그 삶 속에 아기의 이유식이나, 아기의 놀잇감, 아기의 옷, 아기의 기저귀, 아기의 장난감 따위는 없다. 남편은 시간이 나면 아기의 이유식을 만들거나, 아기를 위해 청소를 하거나, 아기를 위해 쇼핑을 하거나, 아기를 위해 놀이를 구상하거나 하지 않고 남편의 시간을 가진다. 더 운동을 하거나, 더 책..
우공군이 동영상 편집에 꽂혀 있던데, 나도 어제 찍은 사진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편집 한번 해 보고 해본적이 없는데다가 시간이 너무 없어서 싱크로도 안맞는다. 그래도 울 아가가 너무 이뻐서 엉터리 같은 편집도 압도한다. p.s 울 산짱 이제 곧 있으면 돌인데 걷기도 잘 걷고 글자도 읽고 혼자 티비 켜고 끄고 음악 듣고 싶으면 씨디 가져오고, 나가고 싶으면 현관문 손으로 가리키고, 고양이, 강아지, 오리 구별하고 각각 소리따라하고 (요즘 고양이에 꽂혔다. 책도 고양이 책만 같이 읽잔다) 오늘은 윙크도 하고 (물론 두 눈을 다 감지만, 근데 한쪽 눈썹 올리는건 되게 잘한다) 아, 이뻐서 죽을 것 같다. 협재는 여전히 아름답다.
흥분과 감동이 흔한 나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서른이 넘으면 그렇지 않을 거라고. 서른을 넘겨 보았는데, 난 아직도 여전히 감동과 흥부이 잦다. 경험이 쌓이면서 시덥지 않은 것들은 더 시덥지 않아졌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흥분할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이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흥분되고, 가슴떨리는 순간은, 꽤 괜찮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이다. 지금 막,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고 나를 가슴 떨리게 한 그것으로 3년 후 책을 낼 계획을 지금 막 세웠다. 사실 그것은 대단한 작품이나 대단한 철학적 깨달음은 아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읽을 책에 대한 계획이고 그것이 오히려 가슴 떨리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멋진 일일 것이다. 더..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제주에 있습니다. 저의 작은 분신 산짱과 함께요. 뒤에 보이는 집은 쉬멍민박 입니다. 지난해에 왔을 때보다 나무들이 무척 많이 자라 정원이 너무 예쁩니다. 서울은 비가 많이 왔다는데, 제주도는 연일 화창하고 날이 무척 더웠습니다 반짝반짝 햇빛속에서 산책하고 수영했던 산짱 새까맣게 탔습니다. 정말 발바닥과 발등의 명암차가..... ㅠㅜ 쉬멍민박 정원에는 제주 채송화도 피어 있습니다. 멀리 이끼 꽃도 함께 피어 있군요. 제주 채송화가 정식 명칭은 아닌데 이 곳에서는 그렇게 부르더군요.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정원 한 구석에 상사화도 피었습니다.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꽃입니다. 가녀린 꽃대에서 불꽃처럼 꽃이 터져 나왔습니다. 산짱은 여전히 카메라를 사랑합니다. 사진 찍는 것이 아..
+ 새로운 룸메이트를 집으로 들인지 100일이 되어간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고, 룸메이트는 놀랍게 빨리 자란다. 나는 아직도 겨울이 익숙하지 않은데, 오랜만에 접속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오른쪽은 온통 봄옷들이다. 세상이 어떻게 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사춘기 시절처럼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지만 아기는 웃고, 거기에서 잠시 모든 것을 잊는다. + 사람의 인지 능력에는 컴퓨터처럼 용량이 있듯이 사람의 사랑에도 용량이 있다. 새 룸메이트 덕분에 원래 룸메이트는 헌 룸메이트가 되었고 나는 여느 부부들처럼 불만 많은 아내가 되어 있다. 그동안 참았던 것들이나 잊고 있었던 것들이 봇물처럼 터지고 나는 잠을 자면서도 헌 룸메이트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무엇이 사랑인지 매일매일 묻고 하나의 질문을 덧붙인다. ..
지난 주 해남에 다녀왔다. 해남에 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진도를 들러 홍주를 만드는 허화자 할머니를 만나는 일이었다. 전주에서 무형문화제가 만드는 죽력고를 만난 이후,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대량생산이 되지 않는 술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 홍주를 만드시는 무형문화제 허화자 할머니였다. 나는 술을 한모금도 못하는 대신 6시간 전에 먹은 음식을 맞출 정도로 후각이 발달(?)했고, 나의 룸메이트는 술을 엄청 좋아하지만 대신 축농증이다. 룸메이트는 나를 보고 신은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며, 술만 마실줄 알았다면 최고의 소뮬리에가 되었을 거라며 부추기는데,^^;;; 어쨌거나, 이런저런 술들을 혀끝에 대보고 냄새를 맡는 것에 재미가 들려 있는데다가 귀한 술을 만드는 분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진..
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08년) 상세보기 소장형태: 학교 도서관 p. 296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아침이 되면 꿈을잊어버리는 것처럼 한밤중에 뱃고동 소리에 깨어났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이들이나 아이같은 사람들은 밤안개와 뱃고동 소리를 기억한다. 일상 생활의 가장평범한 순간, 우체국에서 줄을서서 기다릴 대나 점심을 먹을때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젯밤 뱃고동 소리로 잠에서 깨어났어." 그러면 나는 어린 시절 이후 보스포루스의 언덕에서 살았던 수백만 명의 이스탄불 사람과 함께 안개 낀 밤에 같은 꿈을 꾸었다고 느끼곤 했다. 여행이 환상적인 것은 단순히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공간은 공간으로만 기억될 수 없으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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