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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방 안에 가습기가 물방울을 만들어 내는 소리와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텅 비어 있는 방이, 무언가로 가득차 있는 것만 같고,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삶 역시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무언가로 가득차 있는 것만 같다.
실제로도 그렇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 종일 아기와 살고, 아기를 위해 살고, 다시 아기를 위해 존재한다.
남편은,
직장이 있고, 해야할 공부가 있고, 운동을 한다.
그 삶 속에
아기의 이유식이나, 아기의 놀잇감, 아기의 옷, 아기의 기저귀, 아기의 장난감 따위는 없다.
남편은 시간이 나면
아기의 이유식을 만들거나, 아기를 위해 청소를 하거나, 아기를 위해 쇼핑을 하거나, 아기를 위해 놀이를 구상하거나
하지 않고
남편의 시간을 가진다.
더 운동을 하거나, 더 책을 읽거나, 더 친구를 만나거나, 더 영화를 보거나.
뭔가 불공평하고, 뭔가 답답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나는 아기에 대한 더 많은 점유율을 가진다는 무의식적 보상을 받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용인이 가능하다.
집에 일찍 들어와서 청소할 생각은 안하고 시간난다고 운동을 시작한 남편에 대한 욕을 하는 아기 엄마 두 명이 최근 추가되고 나니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혹은 평범함이라는 것은 이렇게 야속하고 원망스럽고, 그렇지만 우습기도 하다.
너스레는 늘 너스레일 뿐이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글쓸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발악은 하고 있는데, 도무지 되지를 않는다.
보고 싶은 책은 많아서 오디오북이라도 집에 틀어 놓을까 했지만
이노무 몹쓸 귀는 책으로 눈이 따라가지 않으면 도무지 영어 오디오북은 알아 먹을 수가 없다는 비애까지 겹쳐
아기가 6살 되기 전까지는 영어 교육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신념과는 별개로
아기에게 계속 영어로만 이야기 하다가, 입까지 막혀
또 비애에 젖는 중이다.
어느 순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영화관에 가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미술관에 가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커피숍에 앉아 아이패드를 하며 커피를 마시면 그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사람답게 사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되는 것이지
내 가슴에 이렇게 가득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 행복인 것이지, 위안해 본다.
p.s 사진은 산이가 330일 경이 되었을 때 사진. 이때도 엄청 잘 걷는다.
p.s2 영어 공부 안시킨다고 말은 했는데, 책은 영어책을 사주고 있음. 책을 사주는 기준은 무조건 재미인데, 단행본들은 영어로 된 책들이 훨씬 재미있다. 우리나라의 재미있는 책들은 모두 전집으로 들어가 있어서, 고가의 전집을 사주지 않으면 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다른 집들 보니까 전집을 2~3 질씩 사주던데, 우리 아가는 책을 엄청 좋아하는데도 전집이 하나도 없어 약간 미안하기는 하다. 그래서 뭐 하나 사볼까 생각중이긴 한데, 우리 아가 say펜에 꽂혔다. 책 속의 글자를 펜으로 짚으면 노래도 나오고 말도 나오고 하는 펜인데, 그건 또 영어 전집에만 포함되어 있다.
아, 결국 영어책을 사야 하는건가? english egg에 꽂혔다가 16권에 80만원짜리 책을 살 수가 없어서 다른 것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 저렴하고 괜찮은 것들을 추천 받기는 했는데,, 여튼 고민이다.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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