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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해남에 다녀왔다.
해남에 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진도를 들러 홍주를 만드는 허화자 할머니를 만나는 일이었다.
전주에서 무형문화제가 만드는 죽력고를 만난 이후,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대량생산이 되지 않는 술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 홍주를 만드시는 무형문화제 허화자 할머니였다.

나는 술을 한모금도 못하는 대신 6시간 전에 먹은 음식을 맞출 정도로 후각이 발달(?)했고,
나의 룸메이트는 술을 엄청 좋아하지만 대신 축농증이다.
룸메이트는 나를 보고 신은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며, 술만 마실줄 알았다면 최고의 소뮬리에가 되었을 거라며 부추기는데,^^;;;

어쨌거나, 이런저런 술들을 혀끝에 대보고 냄새를 맡는 것에 재미가 들려 있는데다가
귀한 술을 만드는 분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진도로 향했는데.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글들을 보고 할머니 댁에 가게 되었는데,
아니 이런,
인터넷에서 발견한 정보들만을 보고 완전히 잘못짚은게 있었다.

할머니를 그저 술을 만들고 "파시는 분"으로만 생각했던 것.
많은 글들에서 할머니를 그 이상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그래서 으레껏 그러려니 하고 갔는데

아니 이건 웬걸,
가자마자 저녁은 먹었는지, 몇번이나 확인하시고
술 맛보고 싶으냐면서 한가득 대접에 술을 담아 오시더니
죽방 멸치와 완도 돌김을 꺼내 오시고
그걸로 한시간 넘게 함께 수다를 떠시고는

술담그는 모습을 좀 보고 싶다니 새벽 약속까지 잡아 주시고,
새벽에 가니 아침 챙겨 주셔,
술 내려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좀 놀다 오라며
도시락 싸줘,

내린 술 담아서 가져오면서
먹은 밥값이라도 드려야겠다며 술값을 더드리니 끝까지 사양하시더라.
대신 서울 도착하면 소식 궁금하니 꼭 전화하라신다.

대신, 날더러 작가들도 많이 다녀간다시면서, 누구누구도 책 보냈다, 은근슬쩍 압력 넣으시더라.
ㅜㅜ

그 어떤 기사와 블로그도 할머니가 이렇게 정이 많은 분이라고는 쓰여있지 않아서
처음에는 사실 좀 당황했더랬다.
-_-;;
사실, 우리가 할머니를 찾아 뵈었던 첫날 저녁, 우리 전에 할머니를 찾아뵌 어떤 부산 부부의 부산 도착 전화를 받으셨다.
그때 눈치 챘어야 했다. 할머니는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그냥 술사러 온 사람들로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ㅠㅠ






홍주를 내리기 위해서는 새벽 4~5시 경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이 작업은 빚어둔 술덧을 끓이는 것인데 약 2시간이 걸린다.
장작불로 가마솥에서 술을 끓이는데 
나는 수증기만으로도 취하는 것 같더라.




장작을 지피는 과정은 술덧을 덥히는 때부터 홍주가 다 만들어지기까지 계속된다.




홍주는 소주 계열이다. 일종의 증류주인데 이때 이용되는 것이 고조리이다. 항아리 두개가 붙은 것처럼 생긴 고조리는 대접 두개를 바닥을 맞대로 붙여놓았다고 생각하면 쉽다. 위에는 찬 물을 놓고, 아랫부분에는 뜨겁게 올라온 김이 올라와 차가운 윗부분은 만나면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져 이슬이 맺히면 그이슬들이 대나무 조롱을 타고 내려오는 원리이다.

커피로 치자면 싸이폰으로 커피를 우리는 방식과 비슷하다.

단 홍주는 고조리 안에 지초를 넣는 것이 아니라 고조리에서는 백소주가 나오고, 증류해 내려온 백소주에 따로 지초를 우려내는 방식이다.





지초의 뿌리로 만들어진 저것은, 이것만으로도 향이 무척 좋다.
지초의 냄새는 무슨 냄새를 맡는다는 인식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엷지만 일단 냄새가 인식되고 나면 그 냄새가 무척 강하고 오래간다는 느낌이 드는, 무척이나 묘한 냄새이다.
이 말은 물론 상호 모순 문장이나,
자고로 처칠랜드 씨께서는 감각을 언어로 쑤셔 넣을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듯
냄새를 언어로 전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ㅠㅠ





지초의 뿌리는 절구에 찌어서 아랫목에 말려 두었다가 저렿게 우려낼준비를 한다. 고운 광목에 올려놓고 다시 광목을 덮은 후에 그 위로 백소주를 흘려 내보낸다.



이 사진은 가마솥에 고조리를 올려 놓고 붙이는 장면. 고조리 안의 압력이 새지 않아야 잘 증류가 될 것이기 때문에
고조리를 가마솥에 밀봉(?)하는데 이는 벼의 재를 물에 이겨 붙이게 된다.




고조리에서 증류주가 흘러나오고 여기에 홍초를 우려낸다. 보통 5시에 작업하면 7시 정도 쯤에 백소주가 증류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술은 5~6시간 정도 지나야 마무리가 된다.

물론 우리가 취재한 작업들은 홍주를 만드는 마지막 ""하루""의 작업일 뿐이다.
홍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름부터 누룩을 만들고 술밥을 쪄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일년 걸리는 일을 하루만 보고 온거다.




절구에서 지초를 찧는 장면.
그냥 보통의 나무 가지같이 생긴 뿌리를 찧으면 빨갛게 색깔이 우러나온다.




그날 받아온 홍주는 할머니 말씀으로 "팔기도 아까운", 으뜸 중에 으뜸이었다. 매번 손으로 하는 작업이다보니
유난히 더 좋은 술이 나오는 날이 있단다.
운이 좋았는지, 그런 술을 받아가지고 왔다.
하루 종일 술 내리는 것을 보고 받아온 술이라 더 애착이 가더라.



나의 룸메이트와 할머니.
소치 허유 선생의 일가로 유명하기 때문에 진도가 허씨로 유명한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터.
남농 허건 선생이 허화자 할머니의 작은 아버지 되시고,
허정무 감독도 일가 되시나 보더라.

그렇지 않아도 유명한 허씨들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할머니를 찾아온 유명한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역시 지구는 작고,
한국은 더 작더라.
^^;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윤 선생의 이야기였는데
오윤 선생이 허화자 할머니 댁에서 몇 개월 사신 모양이었다.
오윤을 아냐고 물으셔서
그럼요, 선생님 잘 알지요, 그랬더니
한참 오윤 선생 이야기를 하시더라.

마당에 나와 있으니, 저기 오윤이가 더울 때 나와 있던 자리라는 이야기 등
오윤 선생님이 죽은 이야기까지,
아직도 오윤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하시더라.





간다니까, 이런저런 반찬을 챙겨주셨다.
백김치, 옆집 아주머니가 직접 따오신 파래까지 한보따리였는데.
인사 드리고 나와서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내용인 즉슨,
깜빡 잊어버리고 김치 안싸줬는데 지금 돌아오기에는 너무 멀리 갔지? 하시는거다.

사실 할머니 김치가 끝내주게 맛있어서 돌아가고 싶은 맘 100%.
훌쩍, 안그래도 남도 김치 좋아하는데.





아침과 점심 도시락으로 먹은 오곡밥.
마침 그날이 대보름날이라.





큭큭- 진짜 맛있었다고.
할머니 도시락까지 싸주셨다. ㅠㅠ




옆집 아주머니가 직접 채취(?)해 오신 파래를 할머니가 무쳐주셨다. ㅠㅠ
저 양의 두 배쯤 되는 파래를 집에가서 먹으라고 싸주셨다. ㅠㅠ




진도를 다녀온 후유증은 할머니의 정을 그리워하는 것만으로 남지 않았다.
진도의 미로 다방.
진짜 나를 울리는구나.

양은 좀 적어서 아쉬웠지만
쌍화차는 내가 먹어본 것 중 으뜸.

이번주에 종로에서 영화보면서
쌍화차가 너무 먹고 싶어 인사동에 들렸는데,
진도에 다시 가고 싶은 간절한 욕구만 새록새록, 인사동 쌍화차 도저히 못먹어 주겠더라. ㅠㅠ

아, 어떻게 해.
또 먹고 싶어.






p.s 참고로 홍주는 아직 뜯지 않았다.
조만간 어떤 파티를 해야 할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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