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나마 나는 사실 대입 시험에 논술이 포함된 것에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아이들에게 자본주의의 폐해를 가르치고, 경쟁의 부당함을 알리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삶을 비판적으로 보고, 우리가 부당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패배주의에 물들지 않고 희망 속에서
그것을 수정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할 수 있는 것는 첫 걸음이 논술이 아니었던가.
적어도 정치적으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보다 무엇이 옳은 가치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어의 문법과, 수학의 함수와 물리의 공식들 사이에서, 그것이 비롯 입시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그 생각의 기회가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하고 엄청난 계기이다.
그러나 갈수록 논술이 축소되고, 이것이 본고사처럼 변화하는데에 심한 위기감을 느낀다.
심지어 이번에 치뤄진 전국 학력 평가는 어떠했는가. 언론은 시골 학교, 공교육의 약진으로 미화했지만
서울 강남, 대구 동부는 다른 시도가 넘볼 수 없는 ""불패""의 땅이었다.
마치 성취 미달 학생이 많은 지역은 의외로 "서울"이고, 몇몇 지방이 좀 괜찮은 성적을 냈다고 해서 "승리"한 것처럼
묘사되는 것도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서울과 지방의 도식을 부자와 가난한자, 성공한 자와 그렇지 못한자, 멋진 삶과 그렇지 못한 삶으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부자들 뿐만 아니라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가. 지역을 조사해보면
외국 이민자, 혹은 국제 결혼이 많은 지역의 아이들, 탈북자 즉 새터민이 많이 정착한 지역의 아이들,
결국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그저 그런 성적"을 낸 것이다.
왜 이것을 왜 과외와 학원이 많은 서울보다 공교육에 충실한 시골이 더 낫다는 증거로 왜곡하는가.
그러면 왜 서울 강남과 대구 동부를 왜 시골 학교들이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게다가 임실에서 성적 조작 의혹이 나오자 서술형과 주관식이 포함되어 채점에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아이들에게
나라가 나서서 휘발류를 붓고 있는 격이다.
아마 논술 시험은 조만간 더더욱 본고사처럼 변할 것이다.
출제자가 의도한 답이 있더라 하더라도 그것만이 꼭 답이 되지 않는 논술은 응당 이런 빡빡한 경쟁 체제의 입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험이다.
대통령은 1~2점 차이로 대학에 낙방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입시 제도의 변화를 보면 1점, 0.5점, 0.2점 차이로 탈락하는 시스템을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성적이 좋은 학교를 우선 지원하고, 더 많이 지원하겠단다.
가난한 아이들은 더 노력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다는 것인가?
학원에 가지 않고, 과외를 받지 않는 것이 더 노력하지 않는 것인가?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평생을, 또 그 자식들을 가난하게 살게하는 것이 온당하단 말인가.
수능 등급제가 생기고, 초등학교 성적표가 없어지고, 논술 시험이 강화되는 일 등은 모두 수정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대한민국의 의무교육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또, 경쟁으로 학교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네르바 구속, 조중동 광고 중단 운동자들 구속, 촛불집회 참여자 구속, 용산 참사 등등
이번 정권에 분노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교육의 역행과 퇴행이 가장 분노스럽고, 가장 억울하고, 가장 한탄스럽고, 가장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