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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들을 관념화 한다. 커다란 형식을 만들고, 개념을 만들고, 그것들의 형이상학적 은유를 덧붙여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모호한 은유와 개념들은 누구에게든 다가가서 따듯하고 말랑말랑하게 막연하고 낭만적인 의미들을 부여한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진정 우리가 겪었던 절망들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내가 겪었던 절망들은 그토록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절망 안에서도 희망을 찾아, 꿇었던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힘을,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모두 내 안으로 끌어 안을 수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녕과 안위에 대한 염원과 안심 속으로 스멸스멸 파고들었다가 그것들이 절망이 되는 그 순간은, 그 순간의 절망은 총체성과 완전함으로 굳건하게 다져져 있다. 내가 절망을 느끼는 그 순간은 그것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며, 구체적인 것들이다. 내가 이길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명확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물리적이고 확고한 인과관계와 구체성을 갖고 있다.

바꿀 수 있다면 절망하지 않는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절망하지 않는다. 노력해서 가질 수 있다면 절망하지 않는다. 포기할 수 있다면 절망하지 않는다.

바꿔야 하지만 바꿀 수 없을 때, 내가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 곳에 있을 수 없을 때, 나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내게 없을 때, 내가 노력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을 때,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을 때, 그 때가 절망할 때이고 절망하는 순간이다.

절망은 관념이 아니고, 절망은 개념이 아니고, 절망은 몽상이 아니다. 절망 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면 그것은 절망이 아니다. 절망은 순수하고 깨끗하고 완벽하게 절망 그것 뿐이다. 절망은 모든 색깔들을 덮는다. 절망은 가능성도 포기도 덮어 버리고, 잘못된 믿음과 거짓 희망까지도 덮어버린다. 절망의 그 순간은 마지막 한 가닥의 빛도 사라진 완벽한 어둠이다. 희망을 가지라는 위로나 안타까운 시선 역시 어둠 속에 덮이고 사라진다. 절망의 순간 나의 외부도, 나의 내부도 모두 어둠이 된다.

절망은 이렇다. 이런 순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절망이 나를 덮쳤을 때, 내가 완벽하게 어둠이 되고, 세상이 완벽하게 어둠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거짓 희망 말고, 스스로에게 마취와 마약을 주사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견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어떻게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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