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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고 책을 구입했을 때의 일이었는데, 책을 받는 날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자기 소개를 하고, 내가 책을 산 "누구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 역시 천성이 외로움을 타고, 워낙에 심심한 인간이어서 웬만했으면 응대를 했을 터였을텐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20대 초반인 듯 싶었는데, 여차하면 한번 만나자는 기색. 그래서 약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며칠에 걸쳐 몇번이나 전화가 왔다.

내가 구입했었던 책은 [슈레딩거의 고양이]였다.



2. 이번에는 중고책을 팔았을 때의 이야기다. 낡고 오래된, 그리고 얇은 책들을 미끼상품으로 1000원 이하로 팔고 있었다. 고물상에 파는 비용 정도만 받는 거다. 미끼상품은 미끼상품. 사람들은 2500원의 배송비를 물어가며 1000원 이하의 책 한권만을 사지는 않는다. 그런데 주문이 들어왔다. 책은 [철학의 이해] 한권. 내가 500원에 내 놓은 책이었다.

뭐, 그럴 수도있지. 그런데 이 책을 주문한 사람 계속해서 문자질이다. 빨리 받아볼수 있겠냐는둥, 학교 교양 수업의 교재로 쓰인 책이냐는 둥,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하냐는 둥.

주문은 토요일 밤에 들어왔고, 배송 신청은 바로 했지만 토요일 밤이었기 때문에 택배기사는 화요일 아침에 책을 가지러 올 것이고, 배송은 수요일날 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알라딘 배송""" 시스템을 알려주고 수요일쯤 받을 거다. 주말이 끼어있고, 밤 늦게 주문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 더 빨리는 안될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주고,

친절한 지리씨는 철학의 기초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같은 그 구입자에게 "대학 교재로 쓴 책은 아니었다"고 알려주면서 "이런 책은 가볍게 읽고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하고 싶으면 이러이러한 책들을 읽어봐라"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그런데 문자는 책을 받았을 것 같은 수요일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문자의 내용은 갈수록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알라딘 판매자 평가란에, <<배송이 너무 느려...>> <<책은 오나전 헌책....>> 등의 평가를 해 놓았다.

도대체 500원짜리 책을 사면서, 그리고 출고일이 90년대 초반임을 밝힌 책에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그 사람.

그 사람의 주소는 어느 주유소였다. 나는 황량한 주유소의 어느 오후 주유할 차를 기다리며 바깥에서 [철학의 이해]를 읽는 주유원을 상상했었건만....


3.  아침 일찍 주문이 들어왔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한시간쯤 후에 확인을 해 보니 주문책은 [미학입문]. 이런 책들은 룸메와 나의 책들이 너무 많이 겹친다. 미학 관련 책들은 같은 책이 심지어 3권이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책들은 누구책이 누구책인지 몰라, 먼저 밑줄 긋고 이름 쓰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_-;; 

어쨌거나 [미학입문]도 그런 책 중 하나였는데, 책 주문을 받고 바로 택배 신청을 하니, 우연치 않게 10분도 안되어서 주문자에게 전화가 왔다. 부산사투리의 한 여자였는데, 급하니 책을 빨리 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배송 신청을 했다고 말을 했다. (알라딘의 배송 시스템은 배송 신청을 하면 다음날 책을 가지러 온다. 아마 내가 직접 배송을 하면 당일날 보낼 수도 있겠지만 알라딘 배송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대부분 중고책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알라딘 배송 시스템을 이용한다.) 그래서 내가 배송 시간을 더 이상 조정할 수 없다,고 말했더니 이미 입금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금도 내가 직접 돈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주문자가 수취확인을 해야 그때서야 알라딘이 돈을 정산하는 거다,고 말했더니 대뜸 "내가 무슨 책을 주문했는 줄 알기나 하는거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헌책방같은 업체가 아니라 개인이고, 한두권씩 내 책을 팔고 있기 때문에 며칠에 한번 가끔 주문을 받는데, 내용을 모를 수 없다"고 말하니 마구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다시 전화가 와서, 내게 "가만히 있지 않겠다." "이 일은 두고 보지 않겠다" 등등의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왜 화가 났는지 몰라서 최대한 배송 시스템과 알라딘 중고 거래 방식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내가 내 말만 하고 자신의 말은 듣지 않는다면서 더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서 나는 왜 그쪽이 화가 났는지 모르겠으니 설명을 해 달라, 혹시 내 말투가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겠다, 내가 말을 막는다고 했는데, 그럼 뭐 때문인지 나한테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할말이없는지(!) 기가 막혀 말이 안나와 말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뭐가 생각났는지 내가 따지듯이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주 잠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사실 상대방이 이상한 피해의식(?)으로 과도한 반응을 하고,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에 별로 화가 나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의 룸메이트만 발끈.


4.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윗층은 올 2월에 이사했다. 2월에는 집안 확장공사를 하는 것 같았고, 3월부터는 무언가 엄청나게 두들기고 박았다. 심지어는 밤 12시에도 못을 박았는데, 이사온지 얼마 안된 집이니, 그냥 봐주자는 심정으로 밑에서 몰상식함에 대해 욕이나 좀 해주고 말았다. 5월쯤 되어서도 못질과 드릴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게다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쿵쿵 거리는 발소리였다. 전에 살던 사람들은 한창 시끄러운 남자 아이가 살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고, 게다가 일요일 아침에는 집안에서 골프 연습을 해서 깡통안으로 골프공 들어가는 소리가 늦잠을 방해했지만, 그걸로 문제 삼은 적은 한번도 없던 터였다.

그런데 이놈의 발자국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윗집은 새벽 1시 30분이 되어야 잠이 들고, 가족 중 하나는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못질과 드릴소리가 하루종일 이어지다가 밤이 되어  발 소리가 쿵쿵거리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몇번 조용히 해 달라고 윗집으로 올라갔다.

보통 아파트에서는 경비실에 전화를 해 민원을 넣는데-직접 대면해서 얼굴 붉히는일이 없도록- 경비실에 전화를 했더니 아저씨가 오히려 짜증을 내면서, "그 집은 민원 안받는 집"이라길래, 그래도 좀 잘 좀 말해달라고 하니 "그런 집은 안되는 집"이라고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며 직접 올라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두 번 정도 전달 했는데.

그러던 8월의 어느날 내가 있는 엘리베이터에 뛰어 들어오는 한 여자. 우리집 윗층을 누르길래 힐끗 봤더니 그 문제의 집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공사는 잠깐 하고 만다지만, 발소리 같은 생활 소음은 계속 나는거라 좀 힘드니 조금만 신경을 써 달라,고 말하니

""우리도 우리 윗집 발소리 다들려요. 우리도 집이잖아요. 집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좀 참으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싸움닭 지리씨, 발끈 하였지만 이웃과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철칙때문에, 허허허허, 웃다가 기껏 "그럼 올라가세요."라고 내리는게 다였다.

이제 9월이 되니, 발자국 소리는 우엉남 같이 소심하게 생긴 윗집 남자의 우렁찬 분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자의 취미는 가구만들기라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다. 아침 7시부터 망치와 드릴 소리, 나는 이름을 잘알지 못하는 각종 공구 소리, 그리고 오후 5시가 되면 여름의 열린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니스나 페인트 냄새가 확증이었다. 무언가를 일단 만들기 시작하면 최소한 3일은 가고, 그 여자는 너무너무 부지런해서 점심먹는 시간만 빼면 하루종일 쿵쿵거리며 무언가를 조립하고 박고, 드릴질을 한다. 조금도 쉬지 않는 그 스테미너가 경이로울 지경.

층간 소음이 있으니 좀 신경을 써 달라는 말에, 참으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갖고 있는 스테미너답다고나 할까?




**
뭔가 너무 긴 글이 되어 버렸지만, 문득, 연달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메뉴얼을 벗어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난 듯 하다. 내가 문득, 임산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과연 윗집 여자, 다짜고짜 전화에 대고 화를 내는 사람을 나는 설득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음""보다 ""귀찮음""이 더 큰 것도 사실.

누군가가 그랬다. ""너는 꼭 35살 이후가 되면 부자 동네에서 돈 많은 사람들만 상대하면서 살아라.""라고 말이지.
그의 뜻은 ""천박함""은 ""경제적 척박함""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속에서 부닥치면 돈 오천원에도 머리잡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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