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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지구군과 지구당에 갔더랬습니다. 지구당은 소문대로 깔끔한 일본식 규동집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어제는 규동을 판매하는 날은 아니었더랬습니다. 3500원짜리 규동을 먹고 싶었으나 6000원짜리 치킨커리를 먹어야했더랬죠. 일주일에 두번 치킨커리를 하는데, 어제가 치킨커리의 날이었던 게였죠. 안타깝게도 치킨커리를 먹었습니다. 맛도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입구에 맛집이 생겼다며 기뻐했지만 커리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깔끔한 로버트같은 주방장아저씨는 생각보다 손이 느려 - 음식을 해 보니 음식을 잘하는 관건은 좋은 혀와 코, 그리고 빠른 손 밖에는 없더군요- 커리가 약간 식어 나온데다가 사실, 지구군은 커리의 달인이었더랬습니다. 지구군은 인도커리, 한국커리, 일본커리, 독창적커리 등 커리에 관한한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자랑하는데다가 손님들을 접대할때 보였던 인도커리는 지금까지도 왕왕 회자되는 환상적인 맛이었더랬습니다. 지구군의 커리는 약간 싱겁게 간을 하는게 관건이지만 커리 자체가 싱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비밀 재료를 투입하여 밀도가 높으면서도 짜지 않은, 그래서 밥은 아주 조금에 건더기만 잔뜩 먹는다든지, 커리 국물(?) 자체만 열심히 먹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가능한 조리비법을 선보입니다. 이런 지구군과 함께 커리요리를 먹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커리를 먹다보니 지구군의 커리가 더욱 먹고싶어졌고, 지구군 역시 식당을 나오면서 "커리를 먹고 싶다"고 무의식적으로 말하는걸 제가 들어버렸습니다.
저는 요즘 집에서 쉬면서 프랑스 가정식 감자 요리라든지, 잉글리쉬 머핀과 인도식 난을 결합한 이상한 빵, 사이다같은 탄산음료는 전혀 섞지 않은 직접 재워만든 순수한 레몬에이드, 직접 만든 토마토 페스토, 바질 페스토- 사실 바질 페스토를 만들기 위해 직접 바질을 키우고 있습니다. -가 들어간 오일 파스타, 등등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사실 바깥의 음식들이 고달퍼지고 있습니다. 사실, 웬만한 삼청동, 가로수길, 청담동 등등의 8000, 10000원짜리 커피보다 내가 내리는 커피가 백배는 맛있고, 집에서 직접 초콜렛을 녹여서 만드는 핫초콜렛은 핫초콜렛을 전문으로 한다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맛있게 한다는 집들보다 더 맛있다고 자부합니다. 파전, 김치전 부추전 등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먹는게 고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요리솜씨 자체보다는 언제나 부지런함이 우선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을 요리하는건 사실 불가능합니다. 시간도 없을 뿐더러, 사실 지겹기도 하지요. 요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사실, 요리는 지겹습니다. 가끔 한번씩 저를 방문하시는 그분, 소위 요리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분이 오셔야만 가능하죠. 결국 지구군과 같은 고급 개인 쉐프(!!!!)나 제가 공을 들인 음식, 혹은 그와 비슷한 레벨의 음식들이 아니면 음식은 인내심을 기르게 합니다. 아, 그래서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모든 미식가들은 모두 깡말랐나 봅니다. -_-;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제가 미식가라도 된 듯인양 하지만, 사실 저는 미식가가 뭔지 잘 모릅니다. 어쨌거나 서울음식은 꽤 맛이 없는게 사실이고, 서울 식당들은 유동 인구가 많아서인지 맛없는 식당들과 맛없는 유명한 식당들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해서, 저는 인내심이 뭔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즉 맛을 느끼지 않으면서 식사하는 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요.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지구당을 사랑하는 다른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다음에는 꼭 규동을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희망은 사람을 살게 합니다. ^^;
p.s 아차, 방금 생각났는데 지구당에서 파는 맥주에 대한 지구군의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옆에서 어떤 남녀 커플 역시 맥주를 마셨는데, 남자분 커리는 별로, 맥주는 마음에 들었는지 "맥주는 맛있네. 맥주는 아주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지구군에게 맥주를 마셔보라고 추천했던 터였습니다. 옆 커플의 대화를 듣던 지구군이 "아주 맛있는 정도는 아닌데. 집 앞 통닭집만 못한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맥주는 물을 타서 만들기 때문에 싱거운 것이 사실입니다만, 맥주를 보관하고 따라내는 관만 깨끗하다면 꽤 괜찮습니다. 그런데 관이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맥주 맛이 천차 만별에 엉망진창인게죠. 그래서- 정작 저는 술을 전혀 못함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맛있는 맥주집을 종종 데리고 가곤했습니다. 맛있는 맥주집을 찾는건 아주 쉽습니다. 이제 막 오픈한집. 이제 오픈했는데 생맥주가 맛이 없는 집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지구군이 칭찬한 집 앞 통닭집도 제가 추천했더랬죠. 오픈한지 일주일 안에 가고, 그 이후부터는 맛이 점점 떨어집니다. 한달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지구당의 맥주는 일인당 한잔씩만 판매하고 매일 디스펜스를 청소한다는 문구까지 달아놓았기 때문에 맛은 당연히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구군의 코멘트는 웬 것이었을까요. 그러고보니 "생맥주 디스펜서는 매일 청소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문구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제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맥주를 마실 수 없어 직접 평가할 수 없다니, 좀 안타까운 일이군요. 어쨌거나 지구당의 오너는 무척이나 정직한 사람인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바깥 음식은 맛보다 위생과 정직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p.s2
http://hsong.egloos.com/2368936
저는 사실 요즘 이 블로그를 자주 들어갑니다. 눈으로보는 음식들에 대한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꼼꼼하게 찾아가는 법과 메뉴, 가격, 사진등이 올라와 너무 즐거운 음식 블로거 중 하나입니다. 위 사진도 거서 훔쳐왔습니다. 트랙백으로 쓰면 링크가 남는줄 알았더니 제 게시판에는 남지도 않는군요. -_-; 해서 따로 링크를 올립니다.
이 완벽하고 알흠다운 블로그에도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합니다. 제가 아쉬워 하는 것은 본인의 평가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 좋은 곳도 많이 다니고, 좋은 것도 많이 드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동으로 평가도 매우 훌륭해 져야 할 것 같은데, 이 블로거 분은 교묘하게 평가를 피해갑니다. 사실, 음식은 너무 흔한 것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음식에 관한 평론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섣불리 뭐라고 말을 했다가 뜨내기가 되거나, 형편없는 미각의 소유자가 되기 일쑤이죠. 저는 늘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 그렇게 됩니다. 제가 맛있다고 추천한 음식점이 별 3개이상 받아본 역사가 없습니다. 몇년이 지나도 두고두고 최악의 식당으로 이야기되는 그런 식당들은 모두 제가 추천한 식당이었습니다. ^^:;;
어쨌거나 음식을 평가하는 일은 곧 절대적 추천이 될 것이고, 그 추천은 쉬운 것이 아니겠지요. 자신의 입맛과 경험에 엄청난 자신감이 있던가, 아니면 그저 호사꾼이거나, 아니면 미식가의 세계(??)에 관심이 없다면 가능하겠지만요. 하지만 저는 그냥 제 느낌대로 갈렵니다. 저의 평가가 나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그거 자체도 저 아니겠습니까?
p.s3 가게 앞에 세워져 있던 미벨은 보니, 일본것이 맞더군요. 제 기억으로는 20만원 정도면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언제쯤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요? 저의 알흠다운 애마는 지구군이 가져가 버렸답니다. 자전거를 대여해주었는데도, 대가가 없는 걸까요. 이 참에 커리를 해 달라고 졸라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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