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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글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을 맺는 것이 어렵다. 생각은 쉽게 확장되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는 것도 그렇다. 시작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끝을 맺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텔레비전의 하루를 지배하였으나
이제 텔레비전에서는 코미디와 히히덕거리는 토크쇼를 다시 재개하였고
어쩌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기억하기보다 코미디 프로를 보며 히히덕거리는 시간을 더 즐길지도 모른다. 

살 사람은 살아야하고,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만을 생각하고 살 수 없지만
나는 늦은 글을 남긴다.

그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일주일이나 걸린 탓이다.

+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이 어떤 외국인과 연애를 시작하게 될지 모른다면서 곧 출국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노무현이 죽은 이 시점에서의 우리의 기분을 그 외국인이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면 연애를 잘 시작할 수 있을까, 농담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
노무현의 자살과, 노무현의 자살을 지켜본 우리는
단순히 사건의 사실만을 나열한 사건의 일람표에서
노무현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기억할 수 있을까.


급한 연락을 받은 그 날, 나는 뉴욕에 있었다. 어김없이 맨하탄으로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 때 받은 연락은 이것이었다. 「린,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한 표가 급해. 한국으로 돌아와.」  

내용은 대통령 선거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메시지를 받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고, 어렵게 성사된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깨지는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투표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대통령 투표 계획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마치 나의 귀국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기 위해 급하게 돌아온 것처럼 되었고,
사실 그 말도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다.

그만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노무현이라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찍은 사람이라면
그 한 표가, 그 한 마음이 그렇게 절실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를 보류한 야합 정치를 승인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라는 것의 역사가 5년이라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민주주의 대신 지역주의가 승리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것이 노무현을 찍은 사람들의 마음이었고,
그것이 노무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찍은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늘 그의 임기 기간은 아슬아슬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위 상함,
형님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결국 받는 형님조차 부담스러워 한 퍼주기 외교의 비열함에 대한 실망 등으로 인해
쉴 새 없는 조중동식 비난을 관조해 버리는 아슬아슬한 비겁함으로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의 대통령 시절을 보냈다.  

적어도 내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는
그가 지역주의를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줄 것이라는,
비대해진 서울의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땅투기로 가진자들이 더 부자될 수 있다는 후진적 발상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적어도 가난 때문에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고, 인생의 실패자로 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엄숙한 권위주의와 공권력이라는 이름이 이 땅을 지배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크면서도 작은 희망, 소박하지만 큰 바램, 그 당연함에 대한 비장한 열망 때문이 아니었던가.

임기중 도대체 왜 노무현이 비난받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수많은 지니계수와 GNP, 복지 프로그램, 실업자률을 분기마다 찾고 보면서도
의심을 철회하지 않고 강화했다.

이 순간 그 모든 것이 후회되는 것은, 아니 적어도 그 의심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일종의 죄책감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그를 믿지 않았나.
왜 우리는 그를 알려하지 않았나.
왜 우리는 사악한 무리들에게 유혹되었나. 

이 순간, 이것은 그의 죽음 앞에선 나와 우리들의
고백이며 회개이며,
동시에 신앙적 간증이 된다. 

사실 나는 이 순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저 그의 죽음을 맞은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적어도 내가 어떻게 그에게 표를 던졌는지에 대해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늘 그렇듯 이야기는 쉽게 시작했지만 그 끝은 힘들다.

기억은 늘 사실로서만 남지는 않는다.
때문에 노무현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나지 않고
이야기는 지속된다.

그의 죽음이 있었고, 그의 죽음 앞에선 고백과 회개, 그리고 간증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부활이다.
이 땅에 노무현이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
우리는, 그리고 나는 노무현을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진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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