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실, 임신은 여성의 독점적 권리이다. 현대 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기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태아가 수정되는 그 순간을 제외한다면 임신은 철저하게 남성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독특한 여성들만의 경험이다.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을 전적으로 떠맡으면서 사회의 소모적 존재로서의 역할, 즉 대체 가능한 하나의 인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부계사회나 모계사회를 불문하고 임신은 중요한 가치를, 그리고 임신 중의 여성은 독특한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아 왔다.
이러한 임신 중의 여성에 대한 부계사회에서의 지위와 권한은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것인데, 이는 여성을 사회의 소모적 존재로 여기는 인식, 부계사회의 전통을 잇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대체 가능한 하나의 인력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며 이는 현대 여성의 임신에 대한 관점 확립의 주요한 요인이 된다.

이 때문에 임신에 관한 독점적 권리와 경험을 많은 여성들이 포기하기에 이르며, 설사 임신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임신에 대한 배우자의 절대적 관심과 헌신을 요구하게 된다. 만약 배우자의 절대적 관심과 헌신이 여성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배우자에 대한 감정적 연대를 철회하게 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임신이라는 과정은 남성이 절대로 동참할 수 없는 과정이며, 남성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임신이 남성과의 연대를 가능하게는 할 수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경험에 남성은 철저하게 타자라는 뜻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남성은 임신이라는 과정과 경험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고 이는 여성의 지정- 니가 내 뱃속 아이의 아빠이다,라는 지정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성은 여성의 몸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의 지정 과정이 있지 않으면 절대로 사회적 아버지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태아에 대한 권한과 권리를 부여받을 수 없다.  

따라서 사실, 사회 체계와 구성 방식에 있어서 여성은 우월한 위치를 갖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에 나의 의문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이행하게 되는 과정, 즉 BC에서 AD로 넘어가는 남성일신교인 기독교의 등장과 그 종교의 정착 과정이며, 삼국 시대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유교 사회의 정착 과정이다.

김별아의 미실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의 선덕여왕까지 신라 시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미실의 행태, 4명의 남편을 갈아치우면서까지 권력을 유지했었던 한 여성을 ‘난잡하고, 방탕하며, 권력에 눈이 먼 인물’로 묘사하는 것을 보며 이 유교적 기술이 가능하게 된 과정, 그러니까 신라시대에는 미실을 결코 방탕하다고 여기지 않았을 터이지만 조선과 조선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 사회의 유교적 관습이 자리잡게 된 과정이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사회는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완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게 되는 것인가.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패러다임의 전환이 왜 필요하게 되는가. 여성들은 자신의 권한을 뺏기면서 무엇을 받은 것일까. 그것이 얼마만큼 강력했기에 남성과의 평등한 지위를 포기, 혹은 박탈당하기에 이르렀는가.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로다. 

 

P.S 사실, 궁금한 것은 더 많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동물들은 쉽게 하지 않는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는 차별적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는 섬세한 언어와 기록장치의 발명으로 가능했는데, 적어도 언어는 인간의 유전적 본성으로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언어는 어떻게 학습하고, 혹은 언제부터 학습하고 그 구조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가?
사실, 가장 궁금한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자질구레한 궁금증들은,

뱃속의 태아는 외국어와 한국어를 구별할까?
일상 언어와 노래를 구별할 수 있을까?
노래와 가사가 없는 음악은 구별할 수 있을까?
소음과 언어를 구별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분절된 소음은 어떠한가? 소음이 분절되면 그것이 언어와 구별 가능할까?

 

의사 삼촌이 지나가는 말로 농담처럼 모차르트를 많이 들어,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차르트 effect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 사실 나는 이 말에는 무척이나 회의적이다.

이제 벌써 17주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고,
지난주 긴가민가한 움직임이 이번주에는 확실히 태동이라는 것을 느끼는 단계가 되었다.

초산일 경우 20주 가까이 되어야 태동을 느낀다고 하여 절대 태동은 아닐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날씬한 산모(?)는 좀 더 빨리 느낄 수도 있다더니 엊그제는 확실히 배 위에서도 노크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를 숙주로 삼고 있는 나의 뱃속의 unidentified exist는 그렇다면
좋아하는 음악, 혹은 소리에 움직임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나는 모차르트는 몇몇 협주곡을 듣기는 하지만 주로 좋아하는건 레퀴엠이고-_-;;;;;; 해서
초등학교 저학년때 친 이후로 순전히 너무 쉬워서 지루해 절대 연주하지 않았던 모차르트 소나타 따위를 치고 있다.

정말 모차르트 이펙트가 효과가 있다면, 그리고 일반적으로 태동에 대해 기술하는 것에 따른다면 태아는 모차르트 음악이 즐거워서! 움직여야 하는 것인데, 나를 숙주로 삼은 이 녀석은 모차르트에는 절대로 반응하지 않고 있다.

태교에 좋다는 바로크 음악, 텔레만, 바흐, 비발디는 연주나 감상을 불문하고 전혀 반응하지 않고 쇼팽이나 슈베르트 같은 낭만주의 음악을 연주할 때만 활발하게 움직인다.
만약 나의 감정이 전달된다면, 나는 텔레만과 바흐를 무척 좋아하므로 태아 역시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가설 역시 별로 들어맞고 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각도에서 가설을 수정해야 하는데,
1. 긍정적인 감정일 때 움직인다.
2. 숙주(모체)의 감정이 기생체(태아)에게 전달된다.
3. 음악과 소음을 구별하고 음악을 즐길 수 있다.
4. 태아는 바로크 음악과 낭만주의 음악, 데스메탈, 디스코 등을 구별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가설 중 적어도 한개 이상은 수정해야 한다.


여하튼 나는 계속 70년대 디스코 음악이 계속 땡겼고, 요즘은 offspring이 듣고 싶을 뿐이고, 오늘은 죽자사자 corner shop과 포레의 레퀴엠을 들었다.

남들은 태교를 하라지만 사실 태교가 뭔지 모르겠다.
태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거라던데. 그건 평소에 책도 안읽고 음악도 안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인건가?
나는 피가 흥건한 스릴러만 보고, 맨날 해부만 하는 의학 드라마들만 보는데 이건 나쁜 것인가?






어쨌거나 태교에 관한 나의 결로은
임신에 관해서는 100사람이 100개의 금기를 만들어 내므로 나는 나 하고 싶은대로 계속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


'ethan's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룸메이트II 입주!!!!  (3) 2009.11.21
the kid's not my son  (0) 2009.06.29
하루종일 난 뭘하는걸까?  (0) 2009.05.09
해프닝  (1) 2009.04.15
경험 이전의 경험  (7) 2009.04.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