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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진보신당 경기 지부에서 계속 문자와 전화가 와서,
지난 토요일 제2창당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
주제는 녹색정치였다.
토론에서 많은 정책, 운동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지만-
몇 가지 안타까운 점들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했었던 문제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는 분들이
여전히 ""원자력"" 발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자력"'이라는 말은 영어로 말하자면 atom인데 적절하지도 않을 뿐더러
""핵발전""이 핵무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원자력"'으로 대체된 것이다.
사실 원리상 핵발전과 핵무기는 동떨어져 있지 않은데다가
영어로도 nuclear weapon, nuclear power plant 등의 말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많은 환경단체에서 핵발전소의 명칭을 바로 잡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사실을 왜곡시키는 "'원자력"'발전이라는 말은 (적어도 환경 운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폐기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토론에서는 계속 "저는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요." 라는 말이 서슴치 않고 나오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와 관련해서
토론에서는 어떤 이슈를 선점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적어도 진보진영의 대표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어떤 이슈를 홍보하며, 어떻게 이것들을 정책으로서 관철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조금도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많은 정책들이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특히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의식과 수준을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대통령은 ""녹색정치"" ""녹색경제"'라는 말을 선점함으로서 마치
정부가 녹색의 정치와 경제에 매우 많은 노력과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자가당착적이고 모순적인 정책들 가운데서 진보신당은 네거티브 정책 외에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대운하 반대, 유가세 돌려주기 반대 등 그 이상의 이슈가 무엇이 있나.
반면 한나라 당은 서울시 자전거 도로, 관련 교통법 개정, 교토의정서 관련 탄소 배출권과 국내법 개정 등
많은 이슈들을 선점하고 있다.
"'도로를 더 놓겠다""는 이명박의 시대착오적 막말(?)과 화학산업에 대한 보조 등 더 큰 문제들에 있어서는
반생태적 정책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슈를 선점했다는 이유만으로 한나라당의 색깔이 녹색이 되어가고 있다.
두번째로는 정당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환경운동에 관한 문제이기는 하나,
꼭 정당과 무관하다고만 할 수도 없다.
당을 떠나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환경과 문명, 과학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 꼬마들에게도 물어보면 "미래에는 더욱 환경이 좋아질 것이다"고 대답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과학이 더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우리들에게는 과학이 더 말달하면 산업시대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할 것이라는 꿈이 있다.
과학은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과 생태의 이미지는 여전히 반문명적이요, 반도시적이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 ""웰빙""이 먹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웰빙의 삶은 분명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임이 분명한데,
그들은 반문명적인가? 반도시적인가? 반기술적인가? 반과학적인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럴듯한, 혹은 멋진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친환경적 삶을 제시해주고 있지 못하다.
지금 한나라당이 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대안적 삶"' 혹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친환경적 삶에 대한 소개 정도는 하고 있다. 그들이 잘살기 때문에, 돈을 들여 친환경적인 삶을 만드는 것을 제안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어느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만도 없다. 왜 진보 진영에서는 그런 것조차 고민하지 않는가?
적어도 진보진영에서라면 환경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새로운 소비로 대체하는 친환경적 삶이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들 환경운동이라하면 도사님이 되거나, 자린고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산업화 시대의 소비지향 생활 방식에 대해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멋진 삶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된다.
왜 우리는 코코 샤넬을, 사라 제시파 파커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구찌의 캠패인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왜 우리의 환경운동은 대안적 삶을 제시하지 못하는가? 대신 왜 과거로의 회귀만을 강요하는가?
여러가지로 씁쓸하기만 하다.
p.s
요즘 정당 활동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뭐, 정당 활동이라고 해 봤자, 당비를 내고 평당원 활동과 몇 번의 출석 정도가 고작일터이지만.
그것 조차도 나에게는 쉬운 결정이 되지 않는다.
당비도 내지 않는 나에게 문자와 전화까지 해 가며 토론회 참석을 권유하는 마음씀이 고맙기도 하지만,
사실 이면에는 진보 신당의 척박함이 깔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우파독식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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