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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그는 **를 불렀고, 내가 도착했다.
이미 그의 룸메이트는 그날 밤을 다른 곳에서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내가 도착했고 그는 바깥, 어둑한 곳에서 계획이 바뀌었음을 **에게 통보하는 전화를 했다.
음침한 나는 바깥으로 나가려다 통화의 내용을 옅들었다.
그날 밤 내가 그 시간, 그 자리에 도착한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그에게 예상치 못했다는 사실이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는 오지 못했고, 그 자리에는 내가 있었다는 오직 그 사실,
그것만이 사실이 되었고, 과거는 그대로 박제가 되었다.
그때 내가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한 시간만 늦었더라면, 따위의 가정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는 변하지 않으며, 어떤 가정도 거기에는 존재할 수 없다.
이야기는 끝이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언제나 미래의 이야기는 과거로부터 온다.
나는 종종 그와 **가 재회하는 꿈을 꾼다.
어느날의 꿈에서는 그가 내게 고백한다.
미안해, 견뎌보았지만 이건 아니야. 내 마음이 여기에 없는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어느날은 그가 이렇게 고백한다.
넌 다 가졌지만 걔는 그렇지 않아. 그 애가 가여워. 너무 가여워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그러므로 나는 그의 무책임을 비난한다. 그의 철없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비난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랑이고, 사랑이므로.
내가 나의 전남자친구의 꿈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근 2년도 되지 않는다.
꿈에서라도 넌 행복하니, 묻지도, 대답하지도 못하고
널 죽여버리겠어, 내 인생을, 나를 왜 이렇게 만들어, 넌 죽어야 해.
눈물을 흘리며 그 말로부터 도망을 가고
이미 죽어버린 나의 전 남자친구는 그 혼령으로 나의 갈길을 막으면
막힌 길을 돌아, 그 혼령을 뒤로하고 다시 달음박질을 하면서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지. 이건 고작 꿈인데, 왜 나는 꿈에서조차 네 손 한번 다시 잡지 못하는 거니.
니가 내 손을 잡아주면, 잠깐이라도 품에 안아주면
내가 그에게 가서 말할게.
견뎌보았지만 이건 아니야. 내 마음이 여기에 없는건 나도 어쩔 수 없어.
넌 다 가져봣지만 걔는 그렇지 않아. 그 애가 가여워. 너무 가여워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그러면 그는 나의 무책임을 비난하겟지만, 나의 철없음을 한탄하겠지만
그러나 그는 나의 사랑을 비난할 수 없지. 사랑은 사랑이고, 사랑이니까.
그날 밤 내가 도착하고 **는 도착하지 못했을 때
늦은 밤 나는 말도 없이 그곳에서 도망나와 택시를 탔다.
나쁜 남자에게는 나쁜 여자가 어울리지.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는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것,
거짓은 지속되었고 지속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나 단절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고, 사라진 사람들은 저편 어딘가에서
나의 기억을, 그의 기억을 묻고 살고 있다.
나는 그가 언젠가는 나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알수 없는 믿음과
내가 언젠가는 그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욕망을 기억하면서
과거의 무덤 위에 작대기 같은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나무가 무성해질수록 우리는 무덤 밑의 것들을 잊을지도 모르지만
나무는 그 무덤 아래의 것들을 빨아 먹으며 잎사귀를 지피고 꽃을 피운다.
삶은 늘 그렇듯, 지난 일들을 배신하고,
인생은 늘 그렇듯 좌절과 비탄보다는 망각이 우선이다.
살아 있는 한 삶은 계속되고, 미래는 멈추지 않는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나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가 마주하는 지금은 어느 순간으로부터의 미래이다.
지금 이 순간 과거로부터 단절된 듯한 그와 나의 사랑이 어떤 의미인가.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묻혀진 사람들의 지속되는 삶과 미래로부터
이 모순적이고 뜬금없는 사랑은 어떤 의미를, 어떤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이 불완전한 사랑을 끊임없이 완전하다고 세뇌하면서 무엇을 지속할 것인가.
불명료한 과거 위의 것들은 어떻게 비틀거리지 않을 것인가.
그래, 잊어야 할 것들을 잊지 않는 내가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과거를 대면할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주었고
다시 죽어 있는 과거들을 살려내 아프게, 아프게 쓰라린 흉터들을 어루만지며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를 껴 안고, 내가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를 껴 안고, 혼령이 된 남자를 껴안고,
버림받은 루저들을, 세상으로부터 튕겨져 나가버린 인생들을 껴안고
다시, 어느, 미래에 그들의 목을 다시 조를지언정,
다시, 내가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할지언정,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내 가슴으로 다시 껴안고.
이제, 다시는 잊혀진 것들에게 안녕을 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떠나지 않을 것을 알고, 나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안다.
충만도, 분노도, 슬픔도, 좌절도, 거짓 안위도, 잠깐의 망각도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이다.
그림자들아, 이제 가슴으로 들어오라.
두려움도 내 견딜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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