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개성의 탄생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주디스 리치 해리스 (동녘사이언스, 2007년)
상세보기

no two alike

평촌 도서관 대여




잠깐 심리학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서는 철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심리학은 그 동안 철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과 인식 방법,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은 철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역시 철학은 여전히 그 분야를 탐구하고 있고 어떤 부분은 심리학과 철학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는19세기가 되면 점점 심리학은 철학으로부터 탈피하려고 하고 세기말이 가까이 오면서 심리학의 꿈은 성취되게 된다. 그때 심리학이 철학과 차별화된 것은 과학적 방법론이었다. 물론 심리학에서는 내성이 실험방법이었지고 그것이 철학의 전통적 방법이었지만 심리학은 행동심리학이 등장하면서 이 방법론을 폐기하고 좀 더 실험과 통계를 통한 과학적 방법론을 채택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심리학의 방법론이라는 것은 매우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다른 많은 분과들의 실험 역시 설계의 한계와
조건통제의 문제등 객관적 실험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마련이지만 심리학은 사실 그러한 문제를 좀 더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통계의 문제, 표본 추출의 문제, 설문의 문제 등등 거의 모든 실험 설계가 객관적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은 많은 것들을 발견했고, 많은 것 연구 결과들을 축적했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책은 그 주제가 신선하다기 보다는 - 사실 최근 nature vs. nuture의 심리학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이에 대해 신선하고 파격적인 결론을 내세운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의 성격 형성에 무엇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느냐에 대한 질문에 본성(유전)이다, 혹은 양육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즉 무엇이라고 딱 잡아 말하기는 어려운 바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엇이라고 딱 잡아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일어나는 과학적 특징(!) - 비트겐슈타인의 아포리즘,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처럼 딱잡아 말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침묵하는 그 특징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인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는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조목조목,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심리학의 오류"와 학자들의 불성실함을 지적하면서 그 동안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던 가설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유전으로는 쌍둥이의 성격차까지 설명할 수 없고 프로이트 이래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였던 양육방식의 문제 역시 형제간의 성격차를 설명할 수 없다. -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중적이어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모든 문제는 부모가 지게되고, 또 많은 대중들이 그것에 공감한다. 이것은 그 동안의 가설들이 얼마나 대중적인 일반화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100년전 시작되었던 일종의 확대해석임은 분명하다.

해리스는 이러한 본성 대 양육 가설을 거부하면서 그 동안의 믿음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지적한다. 사실, 논문을 쓰다보면 종종 발견하게 되는 출처의 문제들- 인용 논문을 찾아, 찾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정작 그 인용문은 그 의미가 아니었더라든지, 인용문 자체가 가공된 것이었다든지 하는 경우를 왕왕 발견하지 않는가?

최종적으로 그는 사회체계, 관계체계, 지위체계 3가지가 사람들의 성격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설명은 다소 맥빠지는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3체계의 경계는 다소 흐리고 그 동안 우리가 말했던 유전도, 양육도 아닌 제 3의 요인으로 말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이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p. 45

 

발달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은 앨리스 제임스(헨리와 윌리엄의 누이)의 자서전적 글과 작가 존 치버의 글을 대조하여 훌륭한 일례를 제시한 방 있다. 두 사람 모두 성인이 되어 찾아온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글을 썼던 앨리스 제임스는 “당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었듯이 자신의 초조하고 음울한 기분은 타고난 것이라고 믿었다”고 케이건은 지적했다. 반면에 20세기 후반에 글쓰기를 했던 치버는 “자신을 엄습하는 우울증이 어릴 적 경험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 가족 간에 빚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충돌 말이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는 사람들의 성격 차이에 대한 설명은 주로 ‘본성’, 즉 유전에 기반을 두었다. 20세기 중반에 접어들어 문화적 통념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주로 성장기에 부모가 어떤 식으로 키웠는가, 하는 ‘양육’에 초점을 두어 왔다. 여기서 말하는 양육은 환경의 동의어가 아님을 주지하기 바란다. 환경이라는 단어는 더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유전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돌보다’ 혹은 ‘기르다’를 의미하는 말에서 나온 양육은 환경 가운데에서 특정한 한 가지 부분, 즉 부모가 제공하는 부분만을 가리킨다. 성격의 기원을 둘러싼 우리의 문화적 통념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일반적인 환경이 아니라 특정한 양육인 셈이다.

 

 

p. 106

‘베이퍼웨어vaporware’라는 용어를 알고 있는가? 소프트웨어 회사가 요란하게 알리고 선전은 하지만 여태껏 출시된 적도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는 제품을 일컫는 말이다.

 

p. 110

이 증거는 듣기에 아주 인상적이다. 이것은 단기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뉴스위크>>는 전한다. 이 연구는 대상이 된 아이들을 취학연령까지 추적했다. 겁이 많은 아기도 부모가 과잉보호를 중단하자 취학연령이 되었을 무렵에는 소심함이 사라졌다.

이제 이런 질문이 나올 차례다. 과연 이 결과가 동료의 심층검토를 거치는 저널에실렸을까? 웃기는 질문 같지만 대답은 “아니오”이다. 조앤과 나는 <<뉴스위크>>에서 언급된 그 연구가 행해진 적도, 혹은 행해졌다고 하더라도 기사에서 말한 결과가 나왔다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단순히 저널에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출판된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겼다.

 

p. 113

성격특성의 유전 가능성은 0.45다.

 

p. 132

친형제는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성격과 지능에서 다소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의 유사성은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입양된 형제들은 전혀 비슷하지 않다. 플로민과 대니얼스는 그러한 증거는 환경의 영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 모두의 예상대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형제끼리 비슷해지지 않고,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한 가족 내의 두 형제가 개체군 내에서 아이 둘을 무작위로 뽑았을 때만큼 서로 다르다.” 행동유전학 연구에 참여한 피험자들의 성격 차이의 절반은 이처럼 베일에 싸인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절반의 부분을 설명되지 않은 분산이라고 부른다.


 

'폭식이뇌에미치는영향 > 독서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칠리아의 암소  (0) 2009.08.28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0) 2009.07.29
뭐라고,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라고??  (0) 2009.07.10
내몸 사용설명서  (0) 2009.06.20
위험한 생각들2  (0) 2009.06.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