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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대학 때 서울로 오기 전까지 내내 그곳에서 살았지만 그 인생 중 상당히 긴 시간은 불행하게도 내가 살았던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단지, 어른들로부터 전주가 우리나라 5대 도시 중 하나였는데, 어디어디보다 큰 도시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되었다,를 한탄스럽게 듣는 정도가 다였다.

내가 어떤 곳에 살고 있는지 잘 몰랐지만
박정희가 암살 되고 난 직후 시내에는 전두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전두환 정권 장악 반대'의 소규모 피켓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목격 했을만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내가 중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자 사람들은 '광주'에 대해 내게 이야기 해 주기 시작했으며,
내가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과 아는 형(?)들 중 몇몇은 김대중을 '선생'이라고 부르는,
전주는 그런 곳이었다.

김대중을 '선생'이라고 부르는 과장된 어법에 대한 거부감이 가득하면서도
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성당에서 틀어주는 필름을 친구들과 구경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잔악한 폭력성이 가득한
실제 필름 - 심지어는 임산부의 배를 도려내는 군인들과 총의 개머리 판으로 머리가 짖이겨질때까지
사람을 때리는 군인들, 도망가는 사람들을 사냥하듯 총으로 쏘는 군인들, 내 또래의 아이들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는 군인들, 군인들, 군인들로 가득한 그런 필름이었다.

마음 약한 친구들은 성당에서 벌써 도망을 나갔고,
전두환 찢어 죽일 놈, 노태우 씨발놈을 내뱉는 사람들의 조그만 탄식 사이로
외국인 신부의 고백이 울려퍼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도를, 기도를...... .

내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가 내가 중학교 무렵에 다시 복직하셨다.
전라북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인구 때문에 그 당시 복직 교사를 뽑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대신 경상도에서 시험을 보았고, 비교적 전라북도에서 가까운 함양으로
학교를 배정받았다.

경상도에 가니, 전라도 선생님 오셨다고 나름 배려를 해 주셨지만
선거철이 되니, 김대중같은 빨갱이가 아직도 정치하는 우리나라는 이상한 나라,라는 말들을 숱하게 들었고
김대중 찍는 전라도는 빨갱이 아니냐며 핏대를 높히더라는 낯선 풍경을 엄마는 종종 보고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는 사람들을 짖밟았던 정권과 타협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게만 보였다.
권력과 부의 역학 관계, 차별과 혜택 속에서의 비겁, 침묵, 외면으로 시작되는 탈정치화와 정치적 세뇌 등을 그때 나는 몰랐던 것이다.

진학차 서울로 와서 보니
전라도는 전라도로 존재하지 않고 ""전라도-경상도""로 존재하고 있었고
어떤 타이틀 매치를 말하듯,
전라도에 대한 이야기들은 경상도에 대한 대응들로 연관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80년의 광주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는 경상도의 이야기로 번져나갔다.

"지역 감정은 짜증나. 경상도랑 전라도는 왜 저러니?"
라는 말들이 종종 들렸고, 쿨한 서울 애들과 멀리 해외파들은
"호주에도 지역감정 있어." "미국에도 있어." "영국에도 있는 걸."
"하지만 한국 같지는 않아. 시끄럽게 왜 저 난리야."
라며, 전라도의 과거를, 살인의 현장을 공론화 하는 것을 막았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김대중을 '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김대중을 선생으로 부르던 것을 비웃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정치적 무장은 결국 그 과장된 호칭법을 통해서라는 것을
아마도 그때 깨달았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에 교육받는 후배는 더 이상 내 세대의 이야기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교육되었고, 이렇게 살아 왔다.

*

실로 십여년 만에, 시위에 형광 페인트와 최루액이 등장했다.
지나가던 행인을 때려 눕히고, 의료단을 방패로 찍으며, 유모차에 탄 아기에게 소화기를 뿌리는
전경의 집단성 속에는
1980년이 흐르고 있다.

그들에게는 시민이 없고 오로지 적들만 있을 뿐이며
적과 할 수 있는 일은 동맹도, 휴식도, 연합도, 교류도, 보호도 아닌
오로지
전쟁
밖에 없다.

왜 시위대가 무기로 사용하던 비폭력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는가.

국가정부와 국민이 전쟁을 하는 이 사태는,
진정으로 지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끌어 내리고야 말겠다는
괴상한 민주적 쿠데타이고
가고 싶은 곳으로 어떻게든 가겠다는
괴상한 독재적 민주주의다.

시작은 분명 소고기였다.
그러나 이미 집회 초기부터
소고기보다 외교 방식이 더 문제인 사람들이 나왔오기 시작했고
소고기보다 대운하가 더 중요한 사람들이 나왔고
소고기보다 공기업 민영화가 더 중요한 사람들이 나왔고
소고기보다 공교육 말살이 더 중요한 학생들이 나왔고
소고기보다 민주주의 수호가 더 중요한 나 같은 사람들이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수용과 포용, 그리고 소통을 주장했지만
안에서는 폭력 대응을 시작했다.

간혹 이명박 정부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말한다.
왜 고작, 소고기 가지고 이러냐고.
그러나 고작 소고기 가지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다른 문제는 어떨까.
고작 소고기 가지고 타협하지 못한다면
다른 문제에는 어떨까.

민주주의 안에서 대화는 그 누구도 지켜야 하는 성역이다.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대화'의 기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진압봉으로 뒷통수를 가격하고, 도망가는 여자들의 머리를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도대체 5.18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정부는 '국민'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지금 올바른 답을 과연 내 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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