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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감독 장훈 (2011 / 한국)
출연 신하균,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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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오는 길
버스 안에서 내내 울었다.
아, 시팔, 쪽팔리게.

무거운 마음은 억누를 수가 없었고
나는 내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때로는 나도 나를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 누가 죽었기 때문에,
전쟁의 처참한 운명성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땅을 보며 걸었다.

들을 음악을 찾아보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
knokin' on heaven's door를 들었다.
아, 쪽팔리게.

그렇게까지 폼을 잡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랬다.

삶과 죽음, 운명과 삶에 의지
나는 살아 있고, 누군가는 죽어갈 지금 이 시간의 경계가
그냥, 슬펐다.
매우,
몹시.

우리는 모두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들이고,
그것은 때로 죽음 앞에서 너무 버겁다.








p.s 1.  동족 전쟁이라는 의무감을 벗은 보편적 반전 메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전쟁 영화로는 세 손가락안에
'우리나라'라는 경계가 없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도 치켜세울 수 있을만 하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전쟁 영화로 그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또 다른 영화
<JSA>의 수혜를 받고 있다.
JSA가 여전히 남북 휴전인 상황에서 하기 힘든 이야기- 적으로 규정한 북한과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다는 - 를 꺼내 놓았다면
이 영화는 JSA가 만들어 놓은 전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고,
그것은 곧 전쟁의 허무함, 무정함, 비인간성과 같은 좀 더 보편적인 철학들로 발전해 있다.
전쟁 영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반전 영화가 결국 가질 수 밖에 없는 궁극적인 목표 - 전쟁의 참혹함과, 무의미한 죽음 등을 이처럼 효과적으로 보여준 이야기가 있었던가.

보통 전쟁의 무의미함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우리가 악으로 규정했던 것이 '악'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전'은 태생적으로 강력한 사상적 '악'을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악'이 형제임을 보여왔다.
마치 드라큘라에게 피가 빨려 흡혈귀가 된 사랑하는 사람, 혹은 좀비가 되버린 형제를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한국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레드 컴플랙스'를 극복한 후 우리에게는,
그리고 좀 더 넓은 다원주의와 세계 시민주의로 그 폭을 넓혀가고 있는 이 땅에서는
이제 그 선과 악의 대립이 무의미해졌고, 좀 더 쉽게 형제를 죽이는 비극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형제를 죽이는 '비극'이지 전쟁 자체의 비극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철학은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즉, 한국전이라고 하면 보통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이 '동족'을 강조하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동족'이 아니라면 전쟁의 타당성이 생기는 것인가?
<고지전>은 한국인이라면, 혹은 한국 영화라면 가질법한 이러한 한국전에 대한 버거운 의무를 털어버린 듯 하다.
<JSA>마저 끝까지 놓지는 못했던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은
<고지전>에 와서 보편적 인류애로 충분히 확장된다.

결국 영화는 내가 죽이는 적군과, 아군의 구별이 모호해지면서
전쟁은 결국 나와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혹은 나의 동료들과 다르지 않은 이들을
죽이는 것이라는 인식을 남긴다.

스토리 안에서는 적군을 죽이듯 아군을 죽이고, 다시 적군과 아군이 구별되지 않은 채 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순간순간 죽음은 누군가에 죽여지느냐보다, 그저 죽음 그 자체일 뿐이다.

이것을 적군과 아군은 모두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투는 더더욱 의미를 잃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누구든 예상할 수 있듯 "왜 전쟁을 하냐"는 질문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 아마 필연적인 것일 게다.

'빨갱이 간나새끼'를 아무리 세뇌해도
아군과 적군을 보여주는 군복만 아니라면 똑같이 밥먹고, 똑같이 고향을 그리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 안 각각의 플롯에서 반복적 변화를 두고 배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영화 초반에서 군인들은 인민군 옷을 입고 있다. 왜? 추우니까. ^^;; 겉에만 입은 것이 아니라 속에도 입고 있다. 아, 이 의미심장한 장면이여 -


결국 착한 전쟁은 없고 나쁜 전쟁만 있다는 것은
살고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무시무시한 전제가 '전쟁'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만큼,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한 영화는 진정, 없었다.



p.s 2. 수직의 전투, 수평의 전투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전쟁의 이미지를 어떻게 묘사했느냐이다.
언젠가부터 영화들이 총소리에 울림을 빼고 둔탁하고 무겁게 효과음을 쓰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정말, 영화적인 효과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직시하게 함과 동시에 그 둔탁한 폭발음으로 현실감을 준다. 정말 누군가를 죽일, 혹은 죽인 총소리를 내가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 소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둔탁한 총소리를 쓰는 영화들은 대게 화려한 액션보다도 폭력의 잔인함을 보여주거나 폭력의 현실성, 즉 폭력에 대한 실감을 강하게 인식시키고자 할 때 이런 효과를 쓴다.

<고지전>은 응당 둔탁하고 실감나는 총소리를 사용했다. 이에 맞추기라도 하듯, 수류탄과 포탄의 효과 역시 매우 실감난다. 영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시절, 그만한 효과의 무기들이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투 장면의 시각적 묘사 역시 뛰어났는데
첫번재 전투 장면에서는 수직의 전투를 보여준다. 고지를 오를 때의 힘듦과 동시에 쏟아지는 총알, 그리고 주변에서 쓰러지는 동료들. 그것을 넘어, 넘어, 넘어, 넘어, 산까지 넘어, 넘어, 넘어, 넘어 가야하는 심리적 부담감을
롱테이크의 핸드핼드로 길게 함께 넘어간다.

두 번재 전투 장면에서는 수평의 전투로
넘어, 넘어 갔었던 그곳에 다시 벌레처럼 쏟아지는 적군들이 넓고도 넓게 포진되어 있어
그것을- 그 사람들이 아니라- 다 넘어뜨려야 하는 막막함, 반복,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거움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수평의 전투는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였던 '중공군 침투' 장면에서도 반복해 사용된다.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웠던 이 장면은
어둠 속에서 좁디 좁은 시야를 훑다가 갑자기 터지는 불빛 밑에 보이는 수평의 넓고 끝없는 공간에
수없이 많은 중공군이 기어올라오는 그 모습을 순간적으로 맞닥뜨리는 모습이었다. 
이 수평의 공간과 수평으로 막막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중공군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그 끔찍한 공포의 심정을  그 자체로 묘사해 준다.

그리고 다시 또 전투.
마지막인 줄 알았다가, 다시 또 마지막이라는 이름으로 맞닥뜨린 전투.
반복되는 전투를 보는 것 자체로 지치는 관객은 오히려 이 또 한번의 전투에 감정이입된다.
병사들의 감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수평과 수직의 전투는 반복되고.
강은표 역의 신하균과 차태경 역의 김옥빈의 육탄전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강은표는  왜 차태경을 처음 만났을 때 죽이지 못했는가. 어쩌면 개연성이 떨어졌을 수도 있었을 이 장면은 강은표가 차태경을 죽이는 장면에서 그 정당성을 얻는다..

강은표가 차태경을 죽이는 장면은 참호 속에서 둘 다 서 있지만
차태경이 참호의 흙벽에 밀려 서 있기 때문에 마치 강은표에 의해 눕혀 눌려 있는 장면을 옆으로 세운 것처럼 보인다.
그럼으로써 이 장면은 수직의 전투와의 심리적 연장선을 갖는데
마치 강은표가 넘고, 넘고, 넘고, 또 넘어야 했었던 전투처럼, 차태경을 죽이는 것은 넘을 수 없었던 심리적 경계선을 넘어야 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여리디 여린 어여쁜 얼굴을 죽여야 하는 잔정 깊은 남자의 마음, 그것이 곧 전쟁의 비극성이었던 것이었다. 



.p.s 3.

말은 많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장면이 좋았다.
다만 아쉬웠어던 것은 고수가 말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완벽한 몰입을 방해했다는 것.

그러나 고수의 얼굴에 대해, 그저 잘생긴 얼굴의 느낌으로서가 아니라 또 면을 발견했다느느  것은 수확이었다.
또, 이제훈 역시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그의 풋풋함이 돋보이는 역할이었고, - 사실 이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다른 캐릭터들은 사실 어느 정도의 전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인물은 무척이나 참신했고,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전쟁 중의 이런 연약한 인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특별했다.

그러니까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베고, 잔인하게 포로를 처형하여 아군까지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장군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아내의 치마에 눈물을 쏟는, 나는 그런 인물을 늘 그린다.
이제훈이 분한 신일영 역시 그런 인물이다. 어리지만 전쟁으로 단련되어 단호하고 분명해 누구보다도 군인으로서 전쟁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전쟁 속에 있다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어하는 - 그리고  그 양심을 가능하게 하는 명석한 두뇌가 있는 그런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 배우는 무척이나 잘 녹아 있었고, 이미 영화를 본 다음이기는 하지만 그 어떤 다른 배우로도 대체할 수 없을만큼 배역에 완전했다.

가느다랗고 긴 눈과 도톰하면서 순박한 입술, 거기에 단호하고 남자다운 날카로운 코가 인상 깊은 배우다.
다만, 나이가 들면 지금 갖고 있는 느낌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지만, 적어도 30대 초반가지는 지금과 같은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고, 유약하면서 슬프고 명석한 인물, 혹은 진지하면서 풋풋하고 패기넘치지만 불나방 같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는 이중성을 지닌 역할을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또, 불투명한 감정선을 연기하는 것도 썩 괜찮을 것 같아 살인마나 속내를 알 수 없는 로맨틱 코메디 속의 남자로도 꽤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옥빈에 대해.
김옥빈이 이렇게 예뻐 보였던 역할이 있었던가. 김옥빈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이중성, 그러니까 발랑 까졌을 것 같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진무구한 두 눈이 이 역할 속에서는 북한군 최고의 명사수와 고향을 그리는 여린 소녀의 이중성으로 보여진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인물이 좀 더 밝았으면 더 개연성이 있었을 것 같다. 최고 명사수가 가질 법한 자신감, 남자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오만함, 그러면서도 해맑고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 영화의 비극성을 더 잘 살려 주었을 것이다. 인물 분석이 아쉬운 부분이다.


어쨌거나 어쨌거나.



실로 오랜만의 영화였다.
말이 너무 많았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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