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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열가지 생각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보딜 옌손 (여름언덕,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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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형태: 평촌 도서관

20자평: 스웨덴의 물리학자가 쓴 책이라 잔뜩 기대했지만 가벼운 에세이 수준이라 실망하였으나 어찌하다보니 다 읽어버렸다. ㅠㅜ 그만큼 내가 심심하다는 증거.

태그는 인문/과학이라고 달았지만 사실은 둘 다 해당사항은 없다.


p. 17

어쨌든, 시간이 돈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현찰’이 인생 최고의 척도라는 관념을 탈피하려는 새로운 사고의 모색은 가치 있다. 옛 사람들은 탐욕이 가져올 위험을 오늘 우리보다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노동- 즉, 시간-에 대한 대가로 현찰을 달라는 남성 조합원들의 요구에 스웨덴의 농민 부인네들이 반대를 외친 것이 그 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한 대가는 같은 성격의 노동으로 지급되곤 했고, 이 방식이 가계에서도 핵심이었다. 가정일로 번 돈이라고는,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다 제치고 자질구레한 바느질이나 빨래를 한 대가로 받은 게 고작이었다. 손에 쥐어지는 돈이-용돈 수준으로- 극히 적었어도 부인네들에게는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남자들의 일까지 포함해 온갖 노동이 같은 성격의 노동이 아닌 돈으로만 가치가 매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인네들은 당연히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뒤 무수한 변화가 있었고, ‘시간 절약’은 선진국에서 산업 성장의 한 요소로까지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예를 들어 보겠다. 자기 집에서 50km 떨어진 직장까지 차로 출퇴근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하루 100km를 운전하는 셈이고,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p. 18 비용을 계산해 보자. 실제 수치들이 철 지난 느낌이 있겠지만 -지역에 따라선 오히려 후한 장밋빛 계산이 될 수도 있겠다- 계산 방식은 유효하다. 100km 운행에 20파운드가 든다고 치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으로 시간당 평균 5파운드의 보수를 받는다고 치자. 자동차 운전에 드는 비용을 대기 위해 4시간의 일을 해야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출퇴근 소요 시간은 1시간이 아니라 1시간 +4시간=5시간이 된다. 차량의 평균 주행 속도가 시속 20km라면 100km에 5시간이 걸리는 셈이 되니 아예 자전거로만 출퇴근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p. 38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불변의 값을 갖는 단위들이 필요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관찰 가능한 현상 가운데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신뢰했다. 천체의 형태와 운동, 그리고 이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은 불변성이 있어 보였다. 따라서 가령 길이의 기본 단위인 1미터는 적도와 북극점 사이의 거리의 정확히 1천만 분의 1로 정의되었다. 시간이라는 차원과 이를 측정하는 단위는 천문학적 상수constant들을 토대로 정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측정법이 발달하게 되자 천체 현상은 애초에 생각한 것처럼 불변의 존재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맥스웰은 이렇게 주장했다. “거리, 시간, p. 39 질량을 기술할 절대적이고 불변의 단위를 원한다면 행성의 질량이나 운동에 의존해선 안되며, 안정적이고 변치 않으면서 완전히 동일한 원자들과 결부된 질량, 진동수, 파장 등에만 의존해야 한다.

그 결과 새로운 측정 기법들이 새로운 단위와 함께 속속 등장했다. 1초의 정의는 원자의 복사 진동수를 기반으로 하게 되었고, 1미터는 1초의 정의를 토대로 새로이 정의되었다. (각주 생략)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삶을 경험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할 줄 아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새로운 단위들의 강점과 중요성은 사람으로 인한 변동 요인을 최대한 배제하는 객관성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거리가 더 이상 독립된 물리량으로서가 아니라 시간에 연계된 물리량으로서 정의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진공에서 p. 40 빛의 속도를 측정하고 이를 ‘초속 몇 미터’의 형태로 표시할 수 있게 됨으로써 1미터를 훨씬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1미터의 정의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계 시간은 이제 지배적인 단위가 되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과도 잘 조화된다 우리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 현상은 손댈 수 없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 인류는 처음에는 우주에서, 나중에는 원자 구조를 이루는 소우주에서 인간이 조작할 수 없는 상수들의 발견을 영광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아래 시의 지은이처럼 여러분도 평범한 기계 시계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내 시간을 재기 위해
숫자의 기적을 쓰긴 싫다
내 주머니 속 작은 신탁이여,
내게 불멸의 꿈을 꾸게 해다오.







칸트는 하루에 4시간만 공부했다.
근대 산업 사회가 오기 전에 많은 사람들은 하루에 4~5시간만 일하는 것이 관례였다.
여전히 남유럽의 사람들은 시에스타를 즐기는데 그런저런 시간을 제외하면 5시간 정도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남유럽에 갔을 때 이 사람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사는 걸까,라고 궁금해 했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살고, 그것은 단순히 정신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경쟁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허상을 우리에게 안겨주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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