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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붕괴의 20년 - 슬라보예 지젝

오늘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20주년 되는 날이다. 그 성찰의 시간 동안에, 그날 일어났던 사건들의 기적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공산체제는 카드로 쌓은 집처럼 무너졌고, 세계는 그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 할 수 없던 방향으로 갑작스레 변화했다. 폴란드에서 그 누가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자유선거가 실시될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벨벳 혁명(1989년 체코 시민 혁명)의 숭고한 안개는 새로운 민주주의-자본주의의 현실에 의하여 헤쳐 없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민주자본주의가 스스로 선언했던 것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실망과 함께, '좋았던 옛' 공산시절에 대한 향수와, 우파 민족주의 포퓰리즘, 그리고 때늦은 반공주의적 편집증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처음 두 반응은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단지 십년 전에 "빨갱이보다 차라리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던 바로 그 우파들이 이제는 "햄버거나 씹는 것보다 빨갱이 시절이 낫다"라고 우물거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문제는 아니다. 그들은 회색 사회주의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현재의 소망을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이러한 향수는 단지 과거를 서서히 지워나가는 '애도'의 형태에 가깝다. 그리고 우파 포퓰리즘의 문제는, 단지 동유럽에 특정한 일이 아니라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나라들이 겪고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헝가리에서 부터 슬로베니아까지 다시 유행하고 있는 반공주의의 물결이다. 2006년 가을, 사회주의 집권 정당에 대한 대규모의 저항들은 헝가리를 몇 주 동안 마비시켰다. 반정부파들은 국가경제의 위기가 공산당의 후신들에 의한 집권과 연결 시켰다. 헝가리 정부는 민주적 선거에 의해 구성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부의 정당성을 거부했다. 그리고 경찰들이 시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들어간 것은, 마치 1956년 반공산주의 봉기 때 소련군이 이를 분쇄했던 것과 비교되었다.

 이 새로운 반공주의 공포는 심지어 상징물조차도 뒤쫓고 있다. 2008년 6월, 리투아니아는 (소련국가를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망치와 낫처럼 공산주의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공공 전시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2009년 4월, 폴란드 정부는 공산주의적 서적, 의류, 그리고 다른 물품들을 포함한 전체주의적 프로파간다 전반에 대한 금지를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 심지어 누군가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었다고 체포될 수 있는 것이다!

 슬로베니아에서 포퓰리즘적 우파의 좌파에 대한 주된 비난이 현 좌파가 구 공산체제와 '연속적인 권력'을 가졌다는 것임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게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심지어 게이의 권리에 대한 옹호나 합법적 낙태에 대한 옹호들이 나라를 타락시키는 어두운 공산주의 음모라는  (폴란드와 슬로베니아에서 제기되는) 불합리한 주장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제들과 도전들은 낡은 투쟁의 되풀이로 격하되었다.

 이 같은 반공주의의 부활은 어디서부터 힘을 받게 된 것일까? 왜 공산주의 시절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나라에서 반공주의라는 오래된 유령이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새로운 반공주의가 " 자본주의가 정말로 사회주의보다 좋은 것이라면, 왜 우리는 아직도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이지?" 라는 문제에 대해 간단한 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진짜 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 : "우리는 아직 진짜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어, 우리는 단지 민주주의를 위장한 가면에 속고 있을 뿐이야, 과거 공산주의적 분파들이 새롭게 주인과 관리자로 변신해서 여전히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고, 아무 것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았어.. 우리는 또 다른 숙청이 필요해, 혁명이 다시 일어나야 해..."
 
 그러나 이러한 때늦은 반공주의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경고하는 그들 사회의 문제들이 사실 전통적인 좌파들이 남용하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미지 - 소수 부유층의 통치가 형식적 민주주의에 의해 가려지는 사회 - 와 기괴할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해서, 새롭게 탄생한 반공주의자들은 그들이 비난하는 지금의 '왜곡된 가짜 자본주의'가 사실 '자본주의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공산 체제가 붕괴한 후, 환상에서 깨어난 구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에게 반대하던 자유주의 운동가들 보다 더욱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반공의 투사들이 계속해서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그들의 꿈을 성실히 추구하고 있는 동안, 구 공산주의자들은 거침없이 더러운 속임수와 위법 행위를 동원하여 스스로를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로 변신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는 동안에 자본주의화가 허용되었던 나라들에 의해 더 나아간 왜곡이 더해진다. 그들은 서구 자유자본주의자 본인들보다 더욱 더 자본주의자처럼 보인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물리쳤지만, 그 매수대금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본주의를 이겨낼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이 왜 이토록 동요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 자본주의는 항상 민주주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이 자본주의와 직면했을 대, 많은 분석가들은 중국이 정치적 민주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중국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가 오히려 우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더욱 이익을 내는 체제가 된다면 어떨까? 만약 민주주의가 더이상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동반물이 아니라면, 오히려 방해물이라면 어찌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구 공산권 국가들의 실망은 자본주의의 진짜 이미지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미숙한' 기대의 상징으로 기각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동구권의 공산체제에 대해 반대했던 사람들 대다수는 자본주의를 요구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그들의 원하는대로 함께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유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이 원한 삶은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 야만적 이데올로기적 교화에서 자유로운, 냉소적인 위선들을 극복하는 삶.
 
 많은 평자들이 보았을 때, 반대자들을 이끌었던 이상은 그들을 지배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에서 큰 부분을 가져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정도로 불렸던 것을 열망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태도는 두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소련의 기술자였던 빅터 크라브첸코의 삶과 죽음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1944년, 워싱턴으로 무역 임무를 맡았을 때 탈출하여 <나는 자유를 택했다>라는 베스트셀러 자서전을 펴냈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공포를 묘사한 그의 자전적 기록은 1930년대 초반, 그때까지만 해도 체제 신봉자였던 크라브첸코가 집단농장화가 강행되는 것을 도왔을 때, 우크라이나를 휩쓸던 기아사태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1949년 말의 크라브첸코이다. 그 해, 크라브첸코는 프랑스 공산당 주간지 'Les Lettres Francaises'가 그를 알콜중독자에다가 아내 구타자로, 또 그의 회고록이 미국 스파이로 일하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묘사했다는 이유로 그 주간지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파리 법정에서, 소련 장성들과 러시아 농부들이 그 증인으로 채택되어 크라브첸코의 저작이 진실된 것인지 토론했다. 그리고 재판은 그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스탈린 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고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서 승리한 직후, 아직 크라브첸코가 냉전시대의 영웅으로 모든 사람에게 갈채를 받고 있을 때, 그는 용감하게도 조셉 맥카시의 마녀 사냥에 열렬히 반대하며 외쳤다. 

 "나는 공산주의자들과 그 조직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수법과 형식에 의지할 수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경고했다 : 이런 방식으로 스탈린주의와 싸우는 것은 스탈린주의를 닮아가는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
 
 크라브첸코는 또한 서구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더욱 더 괴로워하게 되었고, 그는 "나는 자유를 선택했다."의 후편을 쓰면서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이게 된다. "나는 정의를 선택했다." 그는 덜 착취적인 집단농장 형태를 찾기 위해 헌신했지만, 그 것은 가난한 농부들을 조직하기 위해 그의 전 재산을 탕진했던 볼리비아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 실패로 인하여, 그는 사생활에서도 움츠리게 되었고, 그리고 1966년에 뉴욕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자살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20세기 공산주의에 의해 기만 당하고 21세기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는 (상태에서), 우리는 새로운 크라브첸코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 그리고 단지 그들이 보다 행복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희망할 수 있을 뿐이다. 정의를 찾는 과정에서, 그들은 무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발명해야 한다. 그들은 위험한 유토피아주의자들로 비난 받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야 말로 유토피아적 꿈 -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의 지배 하에 붙잡아 두는 유토피아적 꿈으로 부터 깨어난 유일한 사람들일 것이다.

20 Years of Collapse

TODAY is the 20th anniversary of the fall of the Berlin Wall. During this time of reflection, it is common to emphasize the miraculous nature of the events that began that day: a dream seemed to come true, the Communist regimes collapsed like a house of cards, and the world suddenly changed in ways that had been inconceivable only a few months earlier. Who in Poland could ever have imagined free elections with Lech Walesa as president?


However, when the sublime mist of the velvet revolutions was dispelled by the new democratic-capitalist reality, people reacted with an unavoidable disappointment that manifested itself, in turn, as nostalgia for the “good old” Communist times; as rightist, nationalist populism; and as renewed, belated anti-Communist paranoia.


The first two reactions are easy to comprehend. The same rightists who decades ago were shouting, “Better dead than red!” are now often heard mumbling, “Better red than eating hamburgers.” But the Communist nostalgia should not be taken too seriously: far from expressing an actual wish to return to the gray Socialist reality, it is more a form of mourning, of gently getting rid of the past. As for the rise of the rightist populism, it is not an Eastern European specialty, but a common feature of all countries caught in the vortex of globalization.


Much more interesting is the recent resurgence of anti-Communism from Hungary to Slovenia. During the autumn of 2006, large protests against the ruling Socialist Party paralyzed Hungary for weeks. Protesters linked the country’s economic crisis to its rule by successors of the Communist party. They denied the very legitimacy of the government, although it came to power through democratic elections. When the police went in to restore civil order, comparisons were drawn with the Soviet Army crushing the 1956 anti-Communist rebellion.


This new anti-Communist scare even goes after symbols. In June 2008, Lithuania passed a law prohibiting the public display of Communist images like the hammer and sickle, as well as the playing of the Soviet anthem. In April 2009, the Polish government proposed expanding a ban on totalitarian propaganda to include Communist books, clothing and other items: one could even be arrested for wearing a Che Guevara T-shirt.


No wonder that, in Slovenia, the main reproach of the populist right to the left is that it is the “force of continuity” with the old Communist regime. In such a suffocating atmosphere, new problems and challenges are reduced to the repetition of old struggles, up to the absurd claim (which sometimes arises in Poland and in Slovenia) that the advocacy of gay rights and legal abortion is part of a dark Communist plot to demoralize the nation.


Where does this resurrection of anti-Communism draw its strength from? Why were the old ghosts resuscitated in nations where many young people don’t even remember the Communist times? The new anti-Communism provides a simple answer to the question: “If capitalism is really so much better than Socialism, why are our lives still miserable?”


It is because, many believe, we are not really in capitalism: we do not yet have true democracy but only its deceiving mask, the same dark forces still pull the threads of power, a narrow sect of former Communists disguised as new owners and managers — nothing’s really changed, so we need another purge, the revolution has to be repeated ...


What these belated anti-Communists fail to realize is that the image they provide of their society comes uncannily close to the most abused traditional leftist image of capitalism: a society in which formal democracy merely conceals the reign of a wealthy minority. In other words, the newly born anti-Communists don’t get that what they are denouncing as perverted pseudo-capitalism simply is capitalism.


One can also argue that, when the Communist regimes collapsed, the disillusioned former Communists were effectively better suited to run the new capitalist economy than the populist dissidents. While the heroes of the anti-Communist protests continued to dwell in their dreams of a new society of justice, honesty and solidarity, the former Communists were able to ruthlessly accommodate themselves to the new capitalist rules and the new cruel world of market efficiency, inclusive of all the new and old dirty tricks and corruption.


A further twist is added by those countries in which Communists allowed the explosion of capitalism, while retaining political power: they seem to be more capitalist than the Western liberal capitalists themselves. In a crazy double reversal, capitalism won over Communism, but the price paid for this victory is that Communists are now beating capitalism in its own terrain.


This is why today’s China is so unsettling: capitalism has always seemed inextricably linked to democracy, and faced with the explosion of capitalism in the People’s Republic, many analysts still assume that political democracy will inevitably assert itself.


But what if this strain of authoritarian capitalism proves itself to be more efficient, more profitable, than our liberal capitalism? What if democracy is no longer the necessary and natural accompaniment of economic development, but its impediment?


If this is the case, then perhaps the disappointment at capitalism in the post-Communist countries should not be dismissed as a simple sign of the “immature” expectations of the people who didn’t possess a realistic image of capitalism.


When people protested Communist regimes in Eastern Europe, the large majority of them did not ask for capitalism. They wanted the freedom to live their lives outside state control, to come together and talk as they pleased; they wanted a life of simplicity and sincerity, liberated from the primitive ideological indoctrination and the prevailing cynical hypocrisy.


As many commentators observed, the ideals that led the protesters were to a large extent taken from the ruling Socialist ideology itself — people aspired to something that can most appropriately be designated as “Socialism with a human face.” Perhaps this attitude deserves a second chance.


This brings to mind the life and death of Victor Kravchenko, the Soviet engineer who, in 1944, defected during a trade mission to Washington and then wrote a best-selling memoir, “I Chose Freedom.” His first-person report on the horrors of Stalinism included a detailed account of the mass hunger in early-1930s Ukraine, where Kravchenko — then still a true believer in the system — helped enforce collectivization.


What most people know about Kravchenko ends in 1949. That year, he sued Les Lettres Françaises for libel after the French Communist weekly claimed that he was a drunk and a wife-beater and his memoir was the propaganda work of American spies. In the Paris courtroom, Soviet generals and Russian peasants took the witness stand to debate the truth of Kravchenko’s writings, and the trial grew from a personal suit to a spectacular indictment of the whole Stalinist system.


But immediately after his victory in the case, when Kravchenko was still being hailed all around the world as a cold war hero, he had the courage to speak out passionately against Joseph McCarthy’s witch hunts. “I believe profoundly,” he wrote, “that in the struggle against Communists and their organizations ... we cannot and should not resort to the methods and forms employed by the Communists.” His warning to Americans: to fight Stalinism in such a way was to court the danger of starting to resemble their opponent.


Kravchenko also became more and more obsessed with the inequalities of the Western world, and wrote a sequel to “I Chose Freedom” that was titled, significantly, “I Chose Justice.” He devoted himself to finding less exploitative forms of collectivization and wound up in Bolivia, where he squandered all his money trying to organize poor farmers. Crushed by this failure, he withdrew into private life and shot himself in 1966 at his home in New York.


How did we come to this? Deceived by 20th-century Communism and disillusioned with 21st-century capitalism, we can only hope for new Kravchenkos — and that they come to happier ends. On the search for justice, they will have to start from scratch. They will have to invent their own ideologies. They will be denounced as dangerous utopians, but they alone will have awakened from the utopian dream that holds the rest of us under its sway.


Slavoj Zizek, the international director of the Birkbeck Institute for the Humanities in London, is the author, most recently, of “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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