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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다가 지젝의 인터뷰가 마음에 들어서, 마음에 드는 부분만 발췌했다.

기사의 형식과 글쓴이의 개입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다른 기사들을 살펴보다가

정말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지젝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프레시안, 오마이 뉴스, 경향신문, 한국일보 정도이고, 나머지는 이름도 잘 안들어본 미디어들.

놀랍다. 지젝처럼 유명한 철학자에 대한 기사가, 그것도 한국을 수시로 방문하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에 대한 기사가

그게 다란 말인가?

새로운 사실이네.

 

참고로 지젝은 미국에서도 엄청 인기이지 않은가?

친미 정부는 왜 그런 건 참고 안하나? ㅋ

 

 

기사 전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629170347

 

 

 

"현실 공산주의는 패배했다. 그러나 그 패배가 자본주의의 승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바로 이 공산주의의 실패, 전체주의의 패배를 앞세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선을 가져다 줄 것처럼 여기도록 조장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사유 방식에 혼란을 조성한다. 공동선, 평등, 공공성을 가진 재화와 제도의 사회적 소유 같은 개념들을 혐오하게 만든다. 그 혐오의 심리적 작동 속에 자본주의의 지배전략이 숨어 있다. 나는 이 기만을 해체하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진보 진영과 지젝

이 말에서 오늘날 한국 진보 진영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읽게 된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진보 정치의 '진'자만 나와도 '진저리'치는 상태가 되고 있다. 진보 세력이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진보가 정말 혐오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그 혐오를 느끼고 있는 주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작업은 시급하다. 그 대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보라. 자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재앙을 가져오는지 그 증거는 압도적으로 도처에 존재한다. 오늘날 유럽의 현실이 바로 그 생생한 예 아닌가? 이러고도 여전히 자본주의를 대충 개보수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진짜 미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나 헤겔 철학의 역사관이 주장하듯 '역사의 열차를 타고 가자'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일단 급제동 고리를 잡아 다녀야 할 판이다." 지젝은 모두의 생명안전하게 하는 작업 자체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여기서 '폭력의 문제'가 제기된다. 경희대학교 강연에서 이미 그에 관한 열정을 쏟아내 청중석에서 다양한 질문을 받았던 지젝은, 건국대학교 강연에선 아프리카 출신 젊은이의 도전적인 질문을 마주했다. "지젝, 당신은 폭력을 옹호한다고 말한다. 그게 어찌 대안을 위한 수단이 되는가?"

지젝이 말하는 폭력

모두의 관심이 지젝의 입에 쏠렸다. "내가 폭력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오늘날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인간을 고문하고 짓밟는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구조와 심리, 언론과 철학, 이데올로기로 인간의 의식에 폭력적 훼손을 가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만히 있는 건 우선 말이 되지 않는다. 반격해야 한다. 나는 이 반격의 폭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격의 폭력"이라. 프란츠 파농이 생각나게 하는 발언이다.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서는 반격의 폭력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던 파농 말이다. 지젝의 말이 이어졌다. "히틀러보다 간디가 더 폭력적이었지 않았는가?"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인가?

"히틀러는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무수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우리가 타파해야 할 폭력이다. 이건 기존의 제도, 체제를 작동시키는 폭력이다. 그런데 더 거대한 폭력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기존의 제도, 체제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아하, 이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간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니 간디야말로 비폭력을 앞세웠지만 폭력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영국 제국주의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수준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보면 억지로 들릴 수 있지만, 그가 말하는 반격의 강도와 수준을 이해하게 된다.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문제가 되고 있는 요소들을 그대로 작동하도록 내버려두며 뭔가 고쳐보려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그가 앞서 말했던 "급제동의 폭력"이 되는 셈이다. 이건 히틀러의 폭력과 달리 누구도 물리적으로 다치게 하지 않으며, 도리어 해방의 감격을 선사한다.

총파업, 대중교통의 전국적 마비, 수백만 시민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연좌시위를 하는 일 등은 바로 이 반격의 폭력인 셈이다. 그것은 기존의 통념이 포착할 수 없는 폭력이다. 왜? 기존 제도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기존의 불합리, 모순, 억압을 중단시킬 방법에 대해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구체적이고 준비하려 드는 경향이 있지는 않는가 하는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숙고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껏 하는 일이라고는 "유기농 식품을 사고 공정무역의 뜻에 동참"하는 정도 아닌가 하고 지젝은 힐난한다.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의 만족감만 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그런 정도에 머물러서 과연 우리의 위기를 넘겨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 지젝의 "저항과 해체철학의 근본에 깔린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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