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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학살, 전후 반성

지.리 2013. 1. 15. 11:10

 

부끄러움 모르는 권력 공감할 줄 모르는 사회 [2012.12.17 제940호]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국가폭력 가해자 중 단 한 명의 사죄도 없는 적반하장 사회
공범의식 때문에 희생자들 애도하지 않는 염치없는 사람들

 

 

 

 

 

전후 일본에서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난징대학살 사실이 알려지자 <아사히신문>의 덴세이 진고 기자는 “진실을 보도한 단 한 줄의 기사도 없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적었다. “과거 우리가 먹은 음식, 우리가 입은 옷에는 이미 중국 민중의 피가 스며들어 있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었다. 중국이나 필리핀에서 귀환한 병사들 중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이 있었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국민으로서 책임을 자각한 사람들이 이후 일본군 성노예 문제, 일본군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앞장선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었다. 최근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목사도 있었고, 나눔의집을 방문해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죄하는 일본인도 많다. 한국의 식민지 침략에 대해 일본은 국가 차원의 진정한 사죄는 거의 없었으나 개인 차원의 사죄는 아주 많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친일의 죄과를 고백한 사람은 이항녕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전혀 없었고, 한국전쟁기 대량학살, 베트남 민간인 학살, 광주 5·18 당시 학살 사실을 고백하거나 사죄한 군인은 거의 한 사람도 없었으며, 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의 담당자들인 고문경찰이나 중앙정보부(안기부) 요원, 보안대(기무사) 수사관은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유신 시절이나 전두환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 한 것을 자기비판한 정치가, 관료, 검찰, 공안기관 종사자, 언론인은 거의 없었다.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런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 양심선언이나 고백을 한 사람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욱 드물다. 심각한 국가폭력이 만연해도 그에 대해 책임지거나 사죄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 그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망가진 사회관계를 그대로 말해준다.

가해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법과 명령에 따랐다. 생계를 위해서 강요 때문에 했다,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라고 변명하거나 아예 이광수처럼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뻔뻔스럽게 변명하기도 한다.

공권력 남용이나 불의에 우리 책임도 

소수의 극악한 독재자를 사후에 비난하거나 악마화함으로써 그 독재자 밑에서 복종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책임이 모두 면죄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가 헌법을 무시하고 군대와 경찰로 의회를 무력화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대중의 침묵과 동조가 있는 법이다. 독재정권을 지지한 정치세력의 책임이 가장 크고, 그들의 의중에 따라 정책을 집행한 관료, 검찰이나 사법부, 경찰 고위 간부들이 그 다음의 책임을 갖고 있다. 권력자가 말하는 것을 앵무새처럼 전달하고 그들이 은폐하려 한 것을 들춰낼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은 언론의 책임도 엄중하다. 적어도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우리가 시민권자로서 최소한의 영향력이라도 끼칠 수 있었다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발생하는 조그마한 공권력 남용이나 부정의한 일에도 당연히 우리의 책임이 있다.

통상 국가권력의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잘못에 대해 약간이라도 책임을 느끼는 공직자는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런데 국민에 대해 책임질 일이 없는 전제 정권이나 독재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의 가장 중요한 책임 주체는 국가였고, 특히 국가의 최고지도자였다. 전쟁 중이던 1952년 부통령 김성수는 “사변 발발 직후에는 국민을 기만하여 적의 마수하에 남겨둔 채 무질서한 도주를 감행하여 저 무수한 애국자를 희생시킨 천추의 통한사를 저질러놓고도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마치 구국의 영웅이나 된 모양으로 권력을 남용하여 민주국가에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중대한 인권유린을 감행하였다”고 이승만의 무책임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승만은 북의 침략에 대비하지 못하고 대전으로 피란하고도 서울을 사수하자고 거짓 방송을 했던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그 방송을 듣고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인민군 치하에서 살아남았다고 부역자로 몰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적반하장이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쟁 유가족들의 애도조차 금한 이승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자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들에게 그 자리를 만들어준 주권자인 국민이 힘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쳐줄 수밖에 없다. 즉, 가르침에는 때로 채찍이 필요하다. 법을 어긴 권력자에게는 엄한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처벌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르쳐줘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것 같지 않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자와 그 후계자들은 또다시 국민을 못살게 굴 것이다. 우리 국가권력자들의 책임의식 부재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친일 분자들에 대한 처벌의 좌절에서 온 것이다. 염치를 상실한 친일 분자들이 반공투사로 돌변해 적반하장의 행동을 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이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승만 정권은 전쟁과 국가폭력의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애도조차 못하게 했다. 전쟁 중이던 1951년 제1회 현충일 기념식 석상에서 이 대통령이 한 현충일 기념사를 보면 전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나 가족들에 대한 배려, 생활의 고충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고, 오직 그들이 국가·반공전선의 강화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것을 강조하는 내용뿐이다. 현충일은 국가 기념일이었지 전몰군경을 생각하는 기념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가족은 오직 국가 행사에 초대된 손님일 따름이었다. 이승만은 ‘통곡하기, 제사 지내기, 향 피우기’는 어리석은 행위이며, 이렇게 하면 정중한 예식이 아수라장으로 변해서 손님이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계했다(이임하,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이는 국가가 전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병사와 그 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유족들이 슬퍼하고 통곡하면 반드시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고, 죽은 자와 산 자, 즉 아직 죽지 않은 자 간에 공감의 끈이 형성된다. 이승만은 애도를 통해 이 공감의 끈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했다. 전몰장병이 국가를 위해 죽었다고 말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책임 논란은 물론 애도를 통한 공감, 혹은 분노가 제기될 가능성도 다 없애버렸다.

이후 박정희·전두환 정권 역시 전쟁·분단·독재정권 기간에 발생한 모든 국민의 피해와 희생을 오직 국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해 국민 개개인이 겪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무시하고 애도를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군인은 물론 전쟁기 피학살자 등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의 남은 가족들은 슬퍼할 자유나 권리도 갖지 못했다. 국민은 권력이 무서워서, 그리고 자책감 때문에 애도를 표시하지도 못했다.

미처리히 부부는 ‘애도하지 않는 독일인’이라는 글에서 공포에 대한 반발심과 공범의식 때문에 히틀러 시대의 피해자들에 대해 애도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자신과 히틀러를 동일시한 나머지, 그 시절 저항하지 못하고 지지했던 사실을 부인하지 못함으로써 나치 시대의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 반대의 상황, 그 시대를 지배했던 움직임과 방향, 형태를 결정했던 지성과 도덕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극복되어야만 과거의 잘못이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처리되고 해결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애도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사회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가 과거의 극복을 통해 집단적으로 지혜를 갖게 되는 상황, 도덕심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끄러움은 재발 막는 사회적 자원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애도를 금지하고 동정을 표시하는 것을 위험시해도 보통의 국민은 나름대로 책임감도 갖고 부끄러움도 느낄 줄 안다. 애도의 작업이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 상실의 현실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심리적 과정을 말한다. “우리 집의 노인을 생각해 다른 노인에게까지 생각이 미치고 우리 집의 어린아이들을 보며 다른 집의 어린아이에게까지 신경 쓴다면 세상일을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 있다”(老吾老 人級人之老 幼吾幼 人級人之幼 天下 可運於掌). 이는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나랏일을 걱정하는 일의 기본이 된다는 전통사회의 윤리지만, 오늘날에도 나름대로 유의미하다. 우리가 세상일에 공감을 표시하는 것은 내 가족과 주변의 아픔을 통해 생각이 확장되는 것이지, 추상적으로 어떤 일에 대해 깊은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거 국가폭력에 맞서다 희생당했거나 의로운 활동을 하다가 이런저런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기억을 해주고 애도를 해야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그들과 동시대에 살았으면서도 용기 부족으로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땅히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역사의 흐름에 무임승차를 하고서도,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을 기억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배은망덕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염치와 양심이 없는 존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이 지금 누리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반드시 알아야 하고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 보답을 해야만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야수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부끄러움은 행동의 동력이 되어 차후에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한 행동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사회적 자원이다. 그래서 가해 쪽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폭압적 권력 앞에 침묵했거나 의로운 일을 한 이웃이 고통받을 때 그들을 돌보지 않은 사실에 대해 집단적인 부끄러움은 느껴야 한다. 일본인들이 나눔의집을 방문하거나 수요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그나마 자신의 국가, 그리고 그 국가의 혜택을 받아 지금의 지위를 얻은 자신이 있기까지 누구의 희생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책임의식과 부끄러움의 행동이라 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의 처지에서도 이웃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로 행복한 상태다. 특히 본의 아니게 국가폭력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당연히 이웃의 공감과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 공감과 배려에는 그의 억울한 피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정이 전제된다. 인정은 인간 존엄의 극대치이며, 사랑은 최고의 인정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려면 가족·이웃·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정신이 살아나야 한다. 그것 없이는 법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인간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다가 외롭게 죽을 수밖에 없다.

 

공동체란 공감의 공동체

공동체란 무엇보다도 공감의 공동체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희생당한 사람들,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애도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동춘 교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칼럼 -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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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5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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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글이다.

베트남에 가면 꼭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해야 하겠다.

한국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

 

양심있는 사람으로서, 도덕성과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살아가야만이 나 역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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