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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나는 다음과 같은 책들의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빈서판, 본성과 양육,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디지털 생물학,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도로 본 세계 종교의 역사, 성서가 된 신화
이 책들은 내가 90년대 후반부터 몇 년 전까지 읽은 책들 가운데 끼어 있었던 것으로 이 중 구입한 것은 몇 권 되지 않고 거의 도서관에서 빌려서 본 것들이었기 때문에 이 책들의 공통점은 발견하기 힘들었다.
분야는 진화론, 뇌과학, 문학, 종교, 역사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으며 출판사도 역시 다양하게 걸쳐 있었다. 그런데 이 책들의 공통점은 번역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데에 있었다.
나는 분야, 읽었던 시기, 출판사, 저자 등의 다양한 요소 때문에 그 공통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이 번역자에 대해 검색해 보고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번역 본 중 상당히 많은 책을 내가 읽었기 때문이었다.
분야와 주제를 막론한 번역 책을 분야와 주제를 막론하여 만났다는 것은 기막힌 우연이었지만 취향과 선택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당연한 필연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그 후 종종 나는 번역자들의 선택을 흥미롭게 살펴보곤 하는데,
사실 종종 “이 책은 너무 좋아 시간이 나면 내가 번역을 해 볼까”라고 생각이 드는 책들을 그들에게 뺏기기도 하는 허탈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번역자가 이보디보를 쓴 ‘김명남’이라는 사람이고
그가 번역한 16권의 책 중
순전한 우연으로
10권을 대출했었거나, 구입했거나,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다.
사실 이보디보는 ‘장대익’ 씨의 논문을 읽다가 발견하게 된 책이었다.
(이보디보 관점에서 본 유전자, 선택, 그리고 마음 : 모듈론적 접근 = Genes, selection, and mind from Evo-Devo point of view : a modular approach / 장대익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5 )
마음에 관한 논문을 읽다가 찾게된 논문이었다.
논문과 관련해 책을 찾게 되고 역자를 키워드로 한번 검색해 보고는,
이 사람도 바로 그런(!) 번역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구구저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지만
책의 내용은 책의 발견만큼이나 즐거웠다.
전체 구성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며, 내용 또한 매우 쉽고 탁월해서 더하고 뺄 것이 없었다.
p. 17
......이보디보는 진화를 ‘유전자의 빈도 변화’보다는 ‘유전자 발현의 변화’로 해석함으로써 근대적 종합 이후에 주류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집단유전학적 진화론을 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캐럴이 진화를 ‘스위치의 변화’로 표현한 것은 비유 이상이다. 그는 그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이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구조 유전자’)에만 주로 관심을 쏟았다고 비판하며, 이런 합성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스위치 장치를 만들어 발생의 전 과정을 통제하는 ‘조절유전자(regulatory gene)'가 오히려 진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p. 58
다른 종의 신체부속끼리 비교할 때는 처음에는 같은 부위였지만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변화한 것들인지, 아니면 일대일 연관관계가 분명치 않은 연속 부위들이 엇갈려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도룡뇽, 초식공룡, 쥐의 앞다리와 사람의 팔은 상동기관(homolog)들이다. 동일한 구조가 각 종에 맞게 다른 식으로 변형되어다는 뜻이다. 모두 공통 선조의 앞발로부터 진화한 것이다. 뒷발, 즉 사람의 다리나 네발 척추동물의 뒷다리 역시 상동기관들이다. 그런데 앞다리와 뒷다리는 서로 연속 상동기관(serial homolog)이다. 한 구조가 반복해서 나타났다는 뜻이며, 변형 정도는 동물마다 다르다. 척추와 연관 구조들(갈비뼈), 사지 동물의 앞다리와 뒷다리, 손발가락들, 이빨들, 절지 동물의 구기와 더듬이와 걷는 다리 곤충의 앞날개와 뒷날개가 서로 연속 상동기관들이다.
p. 77
베이트슨은 기형들을 두 가지 기초적인 분류로 나누었다. 반복 부속의 수가 달라진 것, 그리고 부속 중 하나가 다른 부속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형된 것이다. 베이트슨은 후자의 변이에 호메오(homeotic, 그리스어로 같거나 비슷하다는 뜻인 ‘homeos’에서 땄다) 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용어는 매우 중요하니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베이트슨이 기이한 생물들을 수집한 까닭은 자연에서도 형태의 도약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이 진화적 변화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베이트슨의 추론이 언뜻 직관적이며 설득력 있게 보일지 몰라도,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둬야겠다. 생물학자들은 여러 증거를 보았을 때 진화에서 단번에 그런 엄청난 도약이 이루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드물다고 생각한다. 변이형이 생겨난다 해서 곧 새로운 종류나 종의 창시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지식으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반대다. 괴물들은 형질을 전파하지 못한 채 자연선택의 힘에 휩쓸려 사라질 부적합한 형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단번에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바람직한 괴물’이라는 개념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대중과학 매체는 더욱 그렇다.
p. 160
그렇지만 툴킷 단백질 A, B, C의 패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좋은 질문이다. 이들은 또한 각각 유전자 A, B, C에 있는 스위치들의 통제를 받은 것이다. 이 단계보다 앞서 발현한 다른 툴킷 단백질들의 신호를 통합한 결과이다. 아니, 그러면 그 신호들은 EH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보다 더 앞서 활약한 신호들에서 왔다. 나도 이것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수수께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얘기라는 것을 안다. 결국 배아의 공간 정보들이 어디서 왔는지 끝까지 추적해보면 난자가 난소에서 생겨날 당시 내부 분자들이 비대칭적으로 분포되었던 탓이라는데까지 이른다. 덕분에 배아에서 두 개의 중심축이 형성되기 때문이다.(그러니까 결국 닭보다 달걀이 먼저라는 결론이 되겠다). 추적 단계를 모두 밟을 생각은 없다. 지금은 모든 스위치들의 활약이 그보다 앞선 사건들의 결과라는 사실만 이해하면 된다.
p. 376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한 인용문
잘못된 견해를 가진 사람의 생각을 그의 생에 내에 바로잡아주기란 참으로 어렵다. 차라리 과학의 발전은 원래 느린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하는 편이 낫다. 차라리 과학의 발전은 원래 느린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하는 편이 낫다. 그는 진실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손자들은 믿을지 모른다. 지리학의 경우를 떠올려보라. 화석이 유기물질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데만 백 년이 걸렸으며, 그것들이 노아의 방주 시대에 생긴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데 그 후 백 년하고도 오십 년이 더 걸렸다.
p. 410
아인슈타인의 말 인용
하루에 백 번쯤, 나는 내 내적이 삶과 외적인 삶 모두가 살았거나 죽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 위에 구축된 것임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킨다. 그리고 내가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것을 그대로 돌려주려면 전력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생각과 의견ideas and opinions(195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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