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뮤지컬 보이첵. 뷔히너의 위대한 작품도 어떻게 하면 개처럼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였다. 근 일년 사이 뮤지컬을 보면 음악과 연출 작가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으나, 진정 오랜만에 형식과 내용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여 관객다운 관객으로 보았던 뮤지컬이었으니만만큼 몇마디만 하기는 해야 하겠다.

 

 

2.  보이첵의 아내 마리가 장교가 아닌 군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간다. 왜 권력가인 장교가 아니라 군악대장인가? 이 의미없는 조각들의 난발은 수습도 되지 않는다. 보이첵은 역사상 처음으로 프롤레타리아가 무대 예술의 주인공이 된 작품이다. 적어도 이 역사적 의의를 이해하거나, 그러지 못할 거였으면 진지하지나 말든가. 씨발, 군악대장이 어마어마한 신흥 자본가의 아들로 만드는게 그렇게 어려워? 루비 목걸이 하나가 이 모든 암시가 가능한 프랍임??

 

 

3. 도입 부분에서 사람들은 보이첵의 아내를 창녀라 비웃는다. 보이첵은 그런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마리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 믿고 마리를 사랑한다. 그런 마리가 단 한차례 군악대장과 잤다. 그게 인생을 건 여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만한 일인가?

얼마전 절친과 요즘 애들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지루해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한번 자지, 뭘 그리 오래 끄냐고. 뭐,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그건 나이의 문제이지 세대의 문제는 아닌듯 하다. 20살 때야 동거하면 난리나는 줄 알았지만, 몇년도 안지나 주변에는 동거하는 친구들이 넘쳐났다. 라면 먹고 갈래,는 하나의 아이콘이다시피 하지 않았는가. 그런 20대 후반과 30대, 40대를 도대체 이 극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순결이 엄청나게 중요한 남자든가, 철저하게 믿고 있던 아들이 자기 자식이 아니든가, 마리의 피델리티가 불변의 다이아몬드라는 믿음이 있든가. 가난한 프롤레타리아가 유일하게 가진, 가져본 사랑과 사랑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을 왜 창녀가 바람나서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 따위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느냔 말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바꾸는 가난한 군인이 결국 주려했던 것은 돈이었는데, 결국 더 큰 돈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도대체 이 뮤지컬극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정절은 불행하게도 보이첵의 핵심이 아니다. 창녀와 정절과 사랑이라는 모순의 키워드를 놓고 무엇을 따라가게 하는가, 도대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