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민음사, 무진기행, 2007

p. 164.

  버스에 흔들거리며 신문사로 가면서, 그는 영감의 의견과 같이 정부 측의 압력 때문에 만화 연재를 중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은 필화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옛날 자유당 시절에는 그런 사례가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위정자가 바뀌고 보니 그런 경우를 당하기가 힘들어졌다. p. 165 만화가를 건드리면 손해 보는 건 자기들이라는 걸 알아 버린 모양이지. 하긴 어떤 선배 만화가의 얘기에 의하면 지금도 그런 경우가 전연 없지 않다는 것이었다. 방법이 바뀌어져서 간접적인 압력이 있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차라리 행복한 편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의 경우는 아마, 아마가 아니라 거의 틀림없이 자기 만화 자체 속의 어떤 결함, 말하자면 '웃기는' 요소가 부족했다든가 하는 결함에서 당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기 만화 때문에 노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그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워져서 눈을 감아 버렸다. 

 

p. 189

  "차나 한 잔, 그것은 이 회색빛 도시의 따듯한 비극이다. 아시겠습니까? 김 선생님, 해고시키면서 차라도 한 전 나누는 이 인정, 동양적인 특히 한국적인 미담...... . 말입니다." 

  "그, 어린이신문에 그리고 있는 거라도 열심히 하고 있게. 기다리면 또 뭔가 생길 테지." 

  김 선생이 술잔을 들면서 말했다.

  "자, 드세."

  그는 자기의 술잔을 잡으려고 했다. 잘못해서 술잔이 넘어져 버렸다. 그는 손가락 끝에 엎질러진 술을 찍어서 술상 위에 '아톰 X군'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 '아톰 X군', 차나 한 잔 하실까? 군과도 이별이다. 참 어p.190디서 헤어지게 됐더라."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는 다른 손으로 자기의 이마를 한 번 찰싹 때렸다. 골치가 쑤셨기 때문이다. 

  "오, 화성인들의 계략에 빠져서 군이 포로가 되어...... 바야흐로 생명이 위험해져 있는 데서 '다음 호에 계속'이었군...... . 미안하다 '아톰 X군'...... 사람들은 항상 그런 걸 요구하거든. 아슬아슬한 데서 '다음 호에 계속'."

  그는 다 그려진 '아톰 X군'의 얼굴을 다시 손가락 끝에 술을 찍어서, 지우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아톰 X군'. 어떻게 군의 힘으로 적진을 뚫고 나오기 부탁한다. 이제 난...... 힘이 없단 말야. 나와 헤어지더라도...... 여보게, 우주의 광대하고."

  그러면서 그는 양쪽 팔을 넓게 벌렸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영원한 소년으로 살아 있게."

  그들은 밤늦도록 그런 식으로 술집에 앉아 있었다. 

 

 

 

1964년 작품 

---------------------------------------------------------------

마지막 인사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