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풍속도첩’ 가운데 논(밭)갈이 그림.(왼쪽) 소가 마치 밭에 파묻히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등 형태가 부정확하게 묘사된데다 필치도 치졸해 단원 친필로 보기 어렵다고 강관식 교수는 지적했다. 단원풍속도첩에서 가장 명품으로 꼽히는 ‘서당’의 부분 그림. 공부하는 두 학동의 팔과 다리가 하나로 잘못 그려져 한 학동의 어깨가 기형적으로 커진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자료 도판
회화사 연구 권위자 강관식 교수
“단원 ‘풍속도첩’ 도화서 화원들이 그려”
“‘서당’ 작품보면 팔과 다리 혼동
긍재 김득신 등 다른 화풍 뒤섞여…
명품 풍속도 베껴그린 교본” 주장
2008년에도 ‘도첩 19점 위작’ 논란
“단원 ‘풍속도첩’ 도화서 화원들이 그려”
“‘서당’ 작품보면 팔과 다리 혼동
긍재 김득신 등 다른 화풍 뒤섞여…
명품 풍속도 베껴그린 교본” 주장
2008년에도 ‘도첩 19점 위작’ 논란
“우린 이 작품첩을 단원 김홍도(1745~?)의 대표작으로 알고 있지요. 하지만 단원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여기 들어간 25점 그림 모두 단원 작품이 아닙니다.”발표장이 일순 술렁거렸다.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 권위자인 강관식(55) 한성대 교수의 발언 직후 곳곳에선 즉석 토론이 벌어졌다. 강 교수는 지난 8일 열린 미술사학연구회 가을학술대회에서 조선 후기 거장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보물 527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19세기 초 단원의 후배 격인 왕실 소속 도화서 화원들이 시간을 두고 계속 단원과 긍재 김득신(1754~1822) 등 선배들의 명품 풍속도를 베껴 그린 교본이라는 파격적 분석을 내놓았다.강 교수는 ‘<단원 풍속도첩>의 작가 비정과 의미 해석에 대한 몇 가지 시각과 양식사적 재검토’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런 분석을 제기했다. 국내 미술사학 연구자가 풍속도첩의 작가에 대한 의문을 다룬 정식 논문을 낸 것은 처음이다. 앞서 지난 7월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의 천주현 학예사는 이 박물관 논문집에 단원 풍속도첩에 든 ‘무동’ ‘씨름’ ‘나루터’ 등 작품 25점의 재질과 필치 등을 분석한 보고서를 싣고 모두 동일 재질에 한 사람, 곧 단원이 그린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한겨레> 7월11일치 2면)을 내린 바 있는데, 강 교수 논문은 이에 대한 반박의 성격도 지닌 것으로 보인다.강 교수는 우선 ‘서당’ ‘씨름’ ‘무동’ 등의 풍속도첩 대표작에서 팔과 다리를 혼동하고, 왼손·오른손을 바꿔 그리는 등의 치명적 실수가 나타나는데, 명백히 베껴 그린 모본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면모라고 보았다. 또 하나는 도첩 그림들의 도상과 필치에는 단원 말고도 동시대 유명 풍속화가인 긍재의 구도와 화풍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두 대가의 범주에 포괄하기 어려운 다른 화풍도 뒤섞여 나타난다는 점이다. 가장 필치가 뒤떨어지고 화풍도 뒤죽박죽인 ‘나룻배’ 같은 졸작을 화첩 안에 집어넣은 것은 판각 인쇄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화본의 초고 그림본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림 안에 먹물이 흐르고 종이가 찢기고 밀리는 등 극심한 세부 훼손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교본용 화보로 후배 화가들이 썼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았다.강 교수는 “화첩이 단원 것은 아니더라도 문화재적 가치는 여전히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조선 후기 왕실은 부속기관 도화서를 통해 정조대 단원·긍재 등의 풍속화를 전범으로 삼고, 이를 계승시키기 위해 이 화본을 만들도록 했고, 이를 활용했다는 흔적 또한 그림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단원 풍속도첩은 국왕과 선비문인, 도화서 화원 같은 이들이 상호 교류하고 전승하며 수정하는 과정 속에서 조선 후기·말기 풍속화풍을 함께 형성했음을 보여준다”며 “국악에서 대가가 정립한 유파를 후학들이 전승하는 것을 ‘~류(流)’나 ‘~제(制)’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 작품도 김홍도제(류) 풍속도첩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 진준현 서울대 박물관 연구관은 “단원 같은 거장들도, 주문이 많다 보면 작품마다 필력이 차이날 수 있고, 낭만적인 단원의 감성이 사실성과는 맞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며 단원 대표작이라는 기존 견해를 고수했다.단원 풍속도첩은 2008년 5월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가 <진상>이란 책에서 도첩 작품 중 19점이 위작이라고 주장한 뒤, 당시 문화재위원회가 강 교수,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 등 연구자들을 모아 실물 조사를 벌였으나, 모든 작품이 단원 진작은 아니라는 견해가 압도적이어서 진작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바 있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